노인들만 따로 사는 가구 늘며
삼시세끼 간편식 위주로 해결
서양에선 '티 앤 토스트 신드롬'
한국의 경우 탄수화물 편중 심해져
단백질ㆍ아미노산 부족 현상초래
당뇨병ㆍ고지혈증 있는 환자라도
무조건 육류 기피하는 건 안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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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미(77) 할머니는 당 수치가 높은 동갑내기 남편의 건강이 늘 걱정이다. 남편이 육식을 좋아하지만 당 관리를 위해 식탁에 고기반찬을 올리지 않고 있다. 추운 날씨 때문에 시장에 나가기도 힘들어 밥상에 생선을 올리지 않은지도 꽤 됐다. 자신도 고혈압과 관절염을 앓고 있어 손이 많이 가는 요리를 하기가 힘든 김 할머니는 김치, 젓갈, 김 등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 병원에서 체중을 줄어야 한다고 해서 고기도 잘 먹지 않고 소식을 하는 등 나름의 ‘건강 밥상’을 꾸준히 실천해오고 있건만 부부의 건강이 좀체 나아질 기미가 안 보여 김 할머니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최근 ‘삼시세끼’라는 TV예능프로그램이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농촌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손수 해 먹는 단순한 내용임에도 대중의 관심을 받은 것은 뒤집어 보면 우리가 삼시세끼를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반증일 수 있다. 식사는 건강의 바로미터다. 음식을 골고루, 제때, 충분히 먹지 않으면 건강에 적신호가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식사의 질과 양이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노인의 경우 영양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듯하다.
나이 들수록 미뢰 수 감소해 짠맛 선호
나이가 들수록 영양이 불량해지는 원인은 다양하다. 가장 큰 원인은 맛을 느끼는 감각세포가 몰려있는 미뢰(taste bud) 수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성인의 미뢰 수는 평균 245개이지만 74~85세 노인들의 경우 88개 밖에 되지 않는다. 노인들이 일반적으로 음식을 짜게 먹는 이유도 미뢰 수의 감소 때문이다. 노인들은 성인 평균에 비해 짠맛에 3.5배 더 둔감하다.
치아소실도 노인 영양 불량의 주원인이다. 오승원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서울대병원 강남센터)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50% 정도는 치아가 거의 없고, 60세 이상의 20%, 70세 이상의 48%는 의치 착용으로 인해 저작능력이 감소한다. 소화 관련 기능이 약해지고 침 분비가 잘 되지 않아 식욕부진이 발생하는 것도 노인영양에 영향을 미친다.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콜레스테롤 관절염 항우울제 등 질환 치료를 위해 지속적으로 복용하는 약물로 인해 영양흡수와 식욕 저하가 생긴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여기에다 독거노인, 노인단독가구의 급증에 따른 사회적 고립, 경제적 어려움도 노인영양에 장애가 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각ㆍ후각 기능감퇴 등 노화에 따른 신체적 변화 ▦영양소 흡수 및 대사기능 이상 ▦만성질환으로 인한 기능장애 ▦균형적인 식사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 부족 ▦약물복용으로 인한 식욕감퇴와 소화기능 장애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고립 등 요인이 노인 영양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단백질이 배제된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이 노인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정의학과 전문의들은 음식조리 능력과 의욕이 감퇴해 간편식을 찾는 노인들의 식습관을 일컫어 ‘티 앤 토스트 신드롬(Tea & Toast Syndrome)’이라 한다. 미국 등 서구 노인들이 간편식을 찾아 차와 토스트로 식사를 해결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우리의 경우 물에 말은 밥과 김치, 혹은 단일 가공식품만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손기영 서울대병원 가정학과 교수는 “대부분의 우리나라 노인들은 밥 국 김치 김 나물 등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며 “노인들에게는 탄수화물보다 단백질과 아미노산이 필요한데, 탄수화물 위주로 식단이 구성돼 영양불균형이 초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승원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중부지역 2개 도시 노인들의 식사형태를 분석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노인들이 밥, 국(찌게), 김치, 반찬 한 종류 또는 밥, 국(찌게), 김치만으로 식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특정질환을 가진 환자를 제외하고는 지방섭취를 엄격하게 제한하기보다는 충분한 칼로리를 섭취해야 하는데, 연령이 높아질수록 총 열량 섭취량의 대부분을 밥과 같은 탄수화물로 섭취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혈압?당뇨병 환자도 육류?생선 먹어야
노인식단의 또 다른 문제는 나트륨 과다섭취다. 2009년 국민건강영양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남성의 나트륨 섭취량은 4,554mg, 노인여성은 3,116mg에 달한다. 남녀 모두 한국영양학회가 권고한 나트륨 목표 섭취량인 2,000mg을 초과하고 있다. 오 교수는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환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싱겁게 먹는 것”이라며 “만성질환 치료를 위해서는 체중을 감소해야 하는데 짜게 먹는 식습관으로 인해 아무리 소식을 해도 체중감량에 실패하는 환자들이 많다”고 했다. 과도한 나트륨 섭취가 체중조절은 물론 만성질환 관리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영양에 대한 잘못된 정보도 노인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자들은 육류, 생선 등을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와 관련 오 교수는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35.8%가 단백질 섭취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탄수화물 섭취율이 높을수록 대사증후군 유병률이 높아질 수 있으므로 탄수화물 섭취량은 줄이고 지방과 질 좋은 단백질 섭취를 통해 균형 있는 식단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3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1일 영양소 섭취량은 탄수화물 311.3g, 단백질 74.5g, 지방 49.6g으로, 탄수화물 쏠림이 심한 상태다. 밥, 국, 김치 위주로 식사하는 노인층의 경우엔 탄수화물 섭취 비중이 이보다 더 올라갈 가능성이 다분하다.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가 체중, 인슐린, 중성지방 등 대사증후군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2005년 의학저널 ‘Nutrition & Metabolism’에 실린 연구결과에 따르면 고탄수화물 식사(high carbohydrate diets)를 6~12개월간 한 이들은 같은 기간 동안 저탄수화물 식사(low carbohydrate diets)를 한 이들보다 체중, 인슐린, 중성지방 수치가 감소하지 않았다. 한국식품영양학회지에 게재된 ‘노인의 대사증후군 유병에 따른 영양소 섭취특성’(김미현, 경일대 식품과학부) 논문에서도 “고탄수화물 식사는 인슐린저항성을 증가시키고, 고중성지방혈증과 저 HDL 콜레스테롤혈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소개했다. 손 교수는 “65세 이상 노인의 경우 탄수화물보다 필요한 영양소는 단백질”이라며 “과체중이라 해도 단백질 공급원인 육류, 생선 등을 무조건 삼가는 것보다 이들 음식을 섭취해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건강에 좋다”고 했다.
그렇다면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을 앓고 있는 노인들은 어떻게 식사를 해야 할까. 오 교수는 “고혈압환자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나트륨”이라며 “육류와 생선은 과하지 않게 적당히 섭취하면 문제될 것이 없는데, 특히 생선이 좋다”고 했다. 또 “당뇨병환자는 소식과 함께 골고루 먹는 것이 중요하다”며 “단백질 공급원인 육류, 생선 등을 반드시 챙겨 먹어야 한다”고 했다. 고지혈증 환자는 어떨까. 오 교수는 “고지혈증을 앓고 있어도 육류를 무조건 금하지 말고 반찬개념으로 먹는 것은 문제가 없다”며 “고지혈증환자가 조심해야 하는 것은 육류가 아닌 튀김 등 기름기가 많은 식품”이라고 했다.
식사 거르지 말아야… 가족?지인 관심도 절실
무조건 몸에 좋다고 생각하는 과일의 섭취량도 적당히 조절해야 한다. 오 교수는 “식사 후 과일을 과다하게 먹으면 한 끼 식사 이상의 열량을 섭취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며 “사과 반쪽, 귤은 1~2개 정도 먹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남기선 풀무원홀딩스 식문화연구원 식생활연구실 실장은 “밥은 공기에 2/3정도 담고, 반찬은 육류, 생선, 두부, 콩, 계란 중 1가지를, 김치를 제외한 채소반찬 2가지 정도로 식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김치를 너무 많이 먹지 말고, 국과 찌개 국물은 가급적 먹지 말고 건더기만 먹으면 나트륨 섭취량을 현저히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유형준 한림대강남성심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노인들이 하루아침에 식단에 변화를 주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우선 식사를 거르지 말고 제때 먹는 습관부터 들이면 과식하지 않고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다”며 “독거노인, 노인단독가구가 증가해 식사를 혼자 하는 노인들이 많은데 가족, 친지, 지인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시간을 갖는 등 노인영양관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전문의들이 조언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3대 식생활 지침’
1. 김치만 먹지 마라
반찬으로 김치만 먹으면 영양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오승원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노인들은 김치만 먹으면 다른 채소를 먹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며 “나트륨이 많이 포함된 김치만을 고집하면 과도한 나트륨 섭취는 물론 영양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김치와 함께 녹황색 채소를 섭취하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2. 칼슘, 반드시 보충해야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의 60%가 칼슘 섭취비율이 권장섭취량에 미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칼슘부족으로 생기는 대표적인 노인질환이 바로 골다공증이다. 골다공증 예방을 위해서는 폐경기여성은 800mg, 남성은 700mg 정도 칼슘을 섭취해야 한다. 칼슘이 가장 많은 음식은 우유로, 보통 우유 1컵에는 224mg의 칼슘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우유 속 유당을 장에서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는 ‘유당불내증’이 두렵다면 브로콜리, 뱅어포, 두부 등을 통해 칼슘을 섭취토록 해야 한다.
3. 장수 누리려면 짠 음식 멀리해야
음식솜씨가 일품인 어머니가 만들어 준 음식이 어느날 싫어지는 이유는 바로 짠맛 때문. 나이가 들면 미뢰 수가 감소해 짠맛에 둔감하기 때문에 노인들은 짠맛에 길들어져 있다. 짜게 먹으면 우리 몸의 세포들이 탈수되면서 이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갈증중추가 ‘물을 마시라’고 신호를 보내지만, 노인들은 갈증중추마저 둔감해져 웬만하면 목이 마른 것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짜게 먹으면서 물을 안 마시면 탈수상태가 심해져 무력감, 탈진, 의식혼미 등 증상이 나타나고 이 상태에서 수분보충이 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짠 음식은 노인건강의 적이다.
김치중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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