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쿠쉬(Vladimir Kush)의 작품을 소개하는 한국특별전이 지난달 23일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쿠쉬는 뛰어난 상상력과 몽환적인 동화적 표현으로 세대와 시대를 아우르는 작가라는 평을 받고 있으며 현재 미국에서 활동 중이다. 세계가 인정하는 초현실주의의 거장으로 ‘러시아의 달리’로 불린다. 1965년 모스크바 생으로 초반에는 폴 세잔 등의 인상파 영향을 받은 그림을 그리다가 14세부터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초현실주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화풍은 러시아에서 군 제대 후 다듬어 지기 시작했는데,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표현과 인상주의 모티브를 결합시켜 공상적 인상주의의 시조가 되기도 했다. 미국망명 후 미국 로스앤젤레스 ‘아메리칸 오디세이(American Odyssey)’전에서 환상적인 초현실주의 작품들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세계적인 작가가 됐다.
이번 첫 한국특별전에는 그의 대표적인 회화작품들과 오브제, 드로잉들과 함께 리미티드 에디션 주얼리 컬렉션이 전시되고 있다. 필자는 수퍼-리얼리즘이라는 테마로 그의 대표작을 문학적으로 재해석해 보고 작가 쿠쉬의 한국방문을 맞아 한국의 문학, 철학, 공간연출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세미나를 했다. 여기서 수퍼-리얼리즘은 사전적인 용어의 극사실주의가 아닌 초(超)현실(현실을 초월)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실을 넘어서려는 어떤 이미지의 운동성에 주목해 보자는 의도였다. 철학자인 박준상과 공간을 연출하는 극단 ‘서울괴담’의 대표이자 연출가인 유영봉과 함께 했다.
쿠쉬는 자신의 화풍을 기존의 초현실주의와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작품이 해석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은유적 현실주의(Metaphorically-Realism)라는 말을 사용한다. ‘사실주의화법(Real)과 은유화법(Metaphor)’의 합성어로 ‘Metaphorical Realism’ 이란 쿠쉬만의 화풍으로, 관람객으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과 스토리를 상상할 수 있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미지가 생물처럼 활성화돼 가는 이 세계는 일찍이 여러 미술가들이 현실의 중력을 벗어나 접근해온 초현실성과도 관계를 맺고 있고, 수많은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명상과 투시로 사물과 세계를 새롭게 보고자 하는 여행과도 닿아 있다. 쿠쉬는 자신의 그림을 보러 오는 관객에게 독특한 혼합현실(mixed reality)을 제시한다. 드로잉(drawing)의 섬세한 운동과 세필(gradation)의 상상력보다 눈을 비비고 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현실적인)을 제시하고 있다.
이 전시의 큐레이터인 신민경은 전시의 테마를 무의식과 욕망, 환상으로 다뤘다. 그녀의 접근방식은 흥미롭다. 예를 들어 무의식은 사물을 관찰하고 무의식의 흐름에 집중하는 쿠쉬의 작품에서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표현으로 더욱 풍부한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초현실주의 이념을 통해 관람객과 소통하고자 하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욕망의 측면이 잘 드러나는 작품은 ‘작별의 키스’인데, 입술로 오버랩된 일몰과 연인의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욕망에 대한 문학적인 해석의 표현으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쿠쉬의 대표작인데, 우리가 사물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에 대한 의문을 제시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을 말하기 위해 우리 이면의 모습들을 쿠쉬는 주목한다. 마지막으로 ‘환상’은 쿠쉬 작품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이는 주제다. ‘바운티’ 선박을 모티브로 한 ‘플라워 선박의 입항’과 같은 동화적인 쿠쉬의 대표작들과 작가의 상상력의 결정체인 오브제 조각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다. 주변의 일상적인 소재에서 무한한 상상력으로 환상적인 세계를 만들어내는 작가 쿠쉬는 위트있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무뎌진 감각을 유쾌하게 깨워줄 미적 경험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의 새로운 초현실을 만나보는 전시는 4월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김경주 시인ㆍ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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