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불치병에 시달리며 “편안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고 법적 투쟁을 벌여온 영국 존엄사 운동의 대모인 데비 퍼디(51)가 지난 23일 영국 브래드퍼드의 한 호스피스병원에서 숨졌다고 가디언이 보도했다. 퍼디는 상태가 악화된 지난해 12월 입원한 후 음식 섭취를 거부하며 삶을 마감할 준비를 해왔다. 그는 평소 “삶을 끝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계속 사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불치병인 다발성 경화증(몸이 서서히 굳는 병)을 앓았던 퍼디는 고통이 심해지자 안락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경우 안락사를 금지하는 영국 법률에 따라 자신의 임종을 지킨 남편은 최고 14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었다.
퍼디는 2009년 영국 대법원으로부터 조력자살 가이드라인에 관한 판결을 이끌어내 영국 안락사법의 전환점을 마련한 상징적인 인물이다. 이전까지 영국법에 따르면 안락사를 도울 경우 최고 14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었다. 안락사가 허용되는 스위스에 가고 싶었던 퍼디는 자신을 도와줄 남편이 처벌받을 것을 우려해 2007년 “남편이 안락사를 도와도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에선 패했지만, 2009년 영국 대법원은 “안락사 조력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개정하라”고 판결하며 퍼디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에 따라 영국 정부는 ‘당사자가 불치병을 앓는 경우’ ‘당사자가 분명히 안락사를 원하는 경우’ 등 안락사를 도와준 사람을 처벌하지 않는 13가지 기준을 마련하면서 영국에서도 존엄사를 포함한 사실상 안락사가 허용됐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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