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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하게 색칠한 과거… 우울한 리듬이 실향민 현실을 일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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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하게 색칠한 과거… 우울한 리듬이 실향민 현실을 일깨우다

입력
2015.01.02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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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시장’을 둘러싼 의미 없는 논쟁을 지켜 보다 눈물이 날 뻔했다. 부부싸움하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에서 애국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정치인이라는 게 우습고 슬퍼서였다. 이토록 저열한 견강부회라니. 영화 속 대사를 응용하자면, 이런 한심한 이야기를 하필 우리 세대가 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불행하다. 2014년의 사자성어가 괜히 ‘지록위마(指鹿爲馬)’였던 게 아니다.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이 뛰어난 영화는 아닐지라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영화라는 건 분명하다. 세상 물정 하나 모르는 꼬맹이 남매가 시대의 풍랑에 휘말려 손을 놓치고 수십 년 만에 아저씨, 아줌마가 돼 다시 만나는 장면에선 눈물을 훔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지난달 17일 개봉한 이 영화를 새해 첫날까지 관람한 사람이 609만명이라고 한다.

이 영화는 한없이 긍정적이다. 주인공 덕수(황정민)도 아내 영자(김윤진)도 아이들도 서로에 대해서든 국가나 사회에 대해서든 그다지 불평하지 않는다. 쓰라린 현대사의 부조리는 모두 지우고 낭만적 감상주의로 1960~70년대를 되돌아본다. 과거를 달콤하게 윤색해 추억하는 건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 자주 일어나는 퇴행현상인데, ‘국제시장’에선 주인공 세대의 회고가 아니라 주인공을 바라보는 아들 세대의 추정이라는 게 특이하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전쟁을 겪은 부모 세대의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전후 세대의 마음이 그래서가 아닐까 싶다. 개인의 희생을 강요 당하고 가족을 위해 살아야만 했던 사람들, 독재자를 배불리 먹이고 남은 부스러기로 연명해 왔으면서도 독재자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 청춘을 즐겨 보지도 못한 채 외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그들 스스로 건강한 보수 세대라고 자랑스러워 할 만큼 풍요롭고 자유롭게 살았다면 이런 영화가 나오긴 힘들었을 것이다. 국가에 대해 당장 충성을 맹세하라고 애국가가 나오기 직전 영자도 덕수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던가. “당신 인생인데 왜 그 안에 당신은 없냐구요.”

영화 흥행 덕에 극 중 쓰인 노래도 자주 회자되고 있다. 현인의 노래로 유명한 ‘굳세어라 금순아’는 영화가 끝날 때쯤 할머니 제사에 온 가족이 모이는 장면에서 손녀의 귀여운 샤우팅 창법으로 들을 수 있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 목을 놓아 불러 봤다 찾아를 봤다 /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 / 피눈물을 흘리면서 1ㆍ4 이후 나 홀로 왔다”

‘굳세어라 금순아’의 가사 내용은 ‘국제시장’과 비슷하다. 1951년 1ㆍ4 후퇴 당시 흥남 부두에서 ‘금순이’를 잃고 부산으로 피란 와 국제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화자가 금순이를 그리워하는 노래다. 전쟁이 낳은 이 노래는 실향민과 이산가족의 상실감을 어루만지며 1950년대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가사와 달리 ‘굳세어라 금순아’는 부산에서 만들어진 노래가 아니다. 노래를 부른 현인만 부산 출신이지 작사가 강사랑은 전남 여수, 작곡가 박시춘은 경남 밀양이 고향이다. 오리엔트레코드사가 있던 대구에서 레코드사 사장과 현인, 강사랑, 박시춘이 함께 냉면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나온 곡이라고 한다. 강사랑은 1ㆍ4 후퇴를 다룬 기록 영상을 보고 가사를 떠올렸다. 1919년 부산에서 태어난 현인이 가사를 더욱 사실적으로 다듬었을 것이다.

노래의 3절 가사는 좀 거칠다. “북진통일 그날이 되면 / 손을 잡고 울어보자 / 얼싸 안고 춤도 춰보자”라며 금순이에게 굳세게 잘 지내라고 말한다. 영화 OST에선 턱을 떠는 듯 독특한 바이브레이션 창법을 들려준 현인의 노래 대신 이 영화를 투자ㆍ배급한 CJ E&M의 ‘슈퍼스타 K’ 출신인 김필과 곽진언이 함께 불렀다. 원곡과 달리 3절 가사는 빠졌다. 사뿐사뿐 경쾌한 리듬도 훨씬 어둡고 우울하게 바뀌었다. 정치꾼들이 이념 장사에 골몰하는 사이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점점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이 노래가 더욱 우울하게 들린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국제시장’ 중 김필과 곽진언의 ‘굳세어라 금순아’ 뮤직비디오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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