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좀처럼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주요국의 좌파 정권들이 잇따라 ‘우향 우’ 경제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평등과 사회복지도 중요하지만 실업 해소와 경제 성장이라는 눈앞의 기대도 충족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정부는 1일 고연봉 직원을 둔 기업에 최고 75%까지 고율의 세금을 부과하던 부유세를 도입 2년 만에 폐지했다. 경기 침체로 하나 둘 친기업 정책을 도입해온 좌파 올랑드 정부는 이 세제를 통한 세수 확대 효과가없다고 결론 내렸다. 프랑스 재무부에 따르면 부유세로 거둬들인 세금은 2013년 2억6,000만유로, 지난해 1억6,000만유로 등 총 4억2,000만유로(5,600억원)로 전체 소득세 700억유로의 1%에도 못 미친다. 대신 부유세 도입 이후 ‘세금 폭탄’을 피하기 위해 프랑스 국민 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국적을 러시아로 바꾸는 등 부자들의 외국 국적 취득 붐만 조성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올랑드 정부는 경제난 타개를 위해 규제 완화책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지난달 10일 상점의 일요일 영업을 연간 5회에서 12회로 늘렸고, 공증인 등 전문 서비스업의 진입 장벽을 낮췄다. 법조인과 약사 등 고소득 전문직종의 기득권 해체, 약 50억~100억유로 규모의 국유자산 매각 방안도 발표했다.
프랑스와 함께 유로존 경제를 주도하면서 역시 침체에 허덕이는 이탈리아도 중도 좌파인 30대의 마테오 렌치 총리를 구심점으로 해고 요건을 완화한 노동법 개정과 공기업 민영화 등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렌치 총리는 그 동안 과감한 세금감면과 정부 지출 개혁, 노동시장 유연화를 강조해 왔다. 렌치는 취임 두 달 만인 지난해 4월 주요 공기업 수장 4명을 교체하는 등 강력한 공기업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지난 6월 방한 때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는 “현행 최고 31%가 넘는 법인세를 10%포인트 정도 낮추겠다”고 말했다. 기업의 세금 부담을 줄여 기업들의 투자 여력을 북돋아 주겠다는 뜻이다.
남미 경제를 주도하는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정부는 2기 인선에서 재무장관과 기획장관, 중앙은행 총재 등 주요 보직에 특정 정당에 소속되지 않은 시장경제주의자들을 대폭 등용했다. 대놓고 대외적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시그널을 보내면서 시장 신뢰 회복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호세프 대통령은 1일 취임식 후 대국민 연설을 통해 “최근 정부의 긴축 조치들은 경제성장세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서 “2015년은 어려운 해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비관론자들이 말하는 것보다는 더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좌파지만 성장 지향으로 경제정책을 전환한 국가들의 공통점은 낮은 성장률과 높은 실업률이다. 프랑스는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1, 2분기 각각 0%였으며 3분기에도 0.3%에 그쳤다. 반대로 실업률은 사상 최고 수준인 10.4%로 치솟았다. 브라질은 호세프 정부 출범 이후 성장률이 2011년 2.7%, 2012년 1.0%, 지난해 2013년 2.3%로 중국 같은 주요 신흥국과 비교된다. 이탈리아도 지난해 10월 실업률이 13.2%에 이르러 약 40년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15~24세 청년층의 실업률은 무려 43.3%에 달했다.
개혁의 관건은 선심성 정책에 익숙한 국민들의 반발을 얼마나 지혜롭게 헤쳐나가느냐다. 브라질은 재정 긴축이 계속되면 공공 서비스의 질이 떨어져 국민 반발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브라질에서는 대중교통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가 정부와 정치권의 부패ㆍ비리 척결과 복지ㆍ교육에 대한 투자 확대를 통한 공공 서비스 개선을 요구하는 국민운동으로 번지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달 파리 중심가에서 수천 명의 변호사와 공증인들이 정부의 경제개혁법안을 성토하는 시위를 벌이며 규제 완화에 반대하고 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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