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냉장고의 진화, 칸 전체를 영하 1도로 유지하다
김치회사는 유산균 개발 치열
아토피·면역 개선 피부유산균 150억 매출 올리며 새 영역 개척
겨울만 되면 주부들의 한결같은 바람은 “설(음력 1월1일) 에 가장 맛있는 김치를 먹고, 여름까지 김장 김치를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11월24일에 김장을 하면 가장 맛이 좋다는 속설도 경험에서 우러나온 셈이다. 김치 맛에 애간장을 태우는 주부들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같지만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과학과 기술을 바탕으로 김치를 만들어 내고 그 맛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김치를 파는 회사나 김치냉장고를 제조하는 회사 모두 유산균 전쟁을 펼치는 이유도 맛의 핵심이 바로 유산균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유산균 전쟁 김치 냉장고
LG전자가 지난해 출시한 ‘디오스 톡톡’ 김치냉장고는 유산균을 기존 제품보다 9배나 많이 만들어 준다는 점이 부각됐다. TV광고도 유산균이 늘어나는 모습을 꽃이 활짝 피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김은정 수석연구원은 “디오스 톡톡은 200가지가 넘는 김치 유산균 중 김치에서 톡 쏘는 맛을 나게 하는 흰 염주 모양의 ‘루코노스탁’을 더 많이 나오게 하고, 신맛을 내게 하는 ‘락토바실라스’ 생성은 억제하도록 설계돼 있다”고 소개했다.
LG전자 연구팀은 조선대 김치연구센터와 손 잡고 김치회사에서 만든 김치들을 대상으로 2년 넘는 연구개발(R&D) 끝에 루코노스탁은 5~7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산소를 싫어하지만, 락토바실라스는 20도 안팎에서 가장 활동량이 많고 산소를 좋아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 유산균 전문가 정가진 서울대 교수는 “산소가 김치에 접하는 것을 막는 게 핵심”이라며 “김치를 보관할 때 가능하면 국물 안에 담아서 두꺼운 비닐에 싸거나 불투명한 용기에 담아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치가 오래되면 군내가 나고 하얗게 변해 골마지가 생기는 것도 산소에 노출되면서 산성화가 진행된 탓이다.
김치 맛을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한 기술로는 ‘콜드 샥(Cold Shock)’ 기능이 있다. 김은정 연구원은 “김치를 김치냉장고에 넣은 뒤 6일 동안 5~7도로 유지하면 루코노스탁 생성이 극대화되는데, 이후에는 락토바실라스의 생성을 막아야지 맛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6시간마다 영하7도의 냉기를 뿜어내 락토바실라스 활동을 주춤하게 하는 기능이 바로 콜드 샥이다. 하루 3번 40분씩 김치를 급랭시키는 것도 같은 이유다. 김치 제조회사들이 김치를 운반하는 차량 내부온도를 영하 1~2도로 유지하는 것도 맛 좋은 유산균을 유지하면서 락토바실라스 같은 나쁜 유산균 생성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
김치 맛을 유지하는 데는 무의 역할도 중요하다. 정 교수는 “무에는 유산균이 활발하게 자라도록 하는 필수 아미노산이 들어 있어서 김치를 보관할 때는 꼭 무와 같이 넣어주는 게 좋다”고 전했다.
김치냉장고의 기술력은 효과적인 온도 제어를 통해 유산균을 좀 더 잘 다룰 수 있는 방향으로 발달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냉장고 한 칸에 열을 가해 김치를 익힌 후 열 공급을 끊고 보관하는 방식이 주류였다. 하지만 대유위니아(당시 만도)가 1995년 김치 보관을 위한 전용 냉장고인 ‘딤채’를 출시하면서 ‘김치 냉장고’라는 새로운 제품이 탄생했다. 초기 김치냉장고는 칸 전체가 영하 1도 안팎의 온도로 유지됐고, 이후 업체들의 기술개발 경쟁을 통해 2000년대 이후에는 칸마다 온도를 조절해서 유산균 상태를 자유롭게 제어하게 됐다. 대유위니아 관계자는 “현재는 비타민C와 간 기능 개선 및 비만 예방에 도움을 주는 오르니틴 생성을 촉진하는 기술까지 적용되고 있다”며 “위암세포 사멸율을 생김치 대비 3배 이상 향상시키는 숙성기술도 개발됐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한류 김치 유산균
몸에 좋은 유산균 찾기 경쟁은 김치를 만드는 식품회사들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업체들은 김치 맛을 좋게 하거나 이를 잘 유지할 수 있는 유산균을 아예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김치업계 1위 ‘대상 FNF’의 ‘종가집 김치연구소’에서는 2011년 20년 전통의 김치 발효 및 유산균 개발 노하우를 바탕으로 ‘식물성 유산균 발효액 ENT’를 특허 개발했다. 김치로부터 분리한 이 유산균은 100% 국산 식물성 원료인 배추와 무 등을 발효해 만들었으며, 위해 미생물에 대한 강력한 항균 효과를 지녔고 식물성 유산균이라 식품으로 써도 안전하다는 인증을 얻었다. 회사 관계자는 “위해 미생물에서 만들어지는 물질로부터 보호효과가 뛰어나 유통기한을 최소 50% 이상 연장시켜 주고 합성 첨가료 대체 상품의 역할까지 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CJ제일제당은 2008년 ‘CJGN34’를 개발해 하선정 김치에 적용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충북 음성의 김치공장에서 직접 배양해 살아있는 상태에서 균을 김치에 주입하고 이를 통해 김치가 맛없는 시기에도 한겨울 김치처럼 톡 쏘는 탄산감과 시원한 맛을 낼 수 있게 했다”고 밝혔다. 유산균이 자라면 탄산가스가 나오고 김치를 먹으면 시원한 맛을 느끼는 이유는 탄산 때문이다. 광주에 있는 김치세계연구소를 통해 김치 세계화를 적극 추진 중인 정부도 이처럼 김치 맛을 좋게 하는 유산균을 중소업체들에게 보급해서 김치 맛이 업체마다 크게 달라지지 않게 하면서도 맛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김치 유산균은 비단 김치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1993년 강원도 양식장의 송어가 이유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 때문에 집단 폐사 위기에 처했는데 김치에서 뽑아낸 유산균을 썼더니 일부 송어가 살아난 적이 있다. 정가진 교수는 “현재 일부 유산균의 면역력을 활용해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은 8년 넘는 연구개발 끝에 지난해 김치에서 뽑아낸 ‘피부유산균 CJLP-133’을 세계 최초로 출시해 15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김치에서 분리한 3,500개 이상의 유산균 분석을 통해 아토피 치료와 피부면역 개선에 좋은 유산균을 만들어 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회사 건강식품팀 마케팅총괄 박상면 부장은 “그 동안 유산균 시장이 동물성 유산균을 중심으로 장 기능 개선에만 초점이 맞춰져 왔기 때문에 피부 유산균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크다”며 “게다가 의약품과 달리 부작용이나 내성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2개월~13세 어린이 83명을 대상으로 12주에 걸쳐 1회당 2g 분량으로 하루 2번 ‘CJLP 133’을 섭취한 그룹을 분석한 결과 CJLP 133 유산균을 먹은 어린이들은 피부증상 개선효과가 두드러졌다. 박 부장은 “알레르기성 질환과 아토피, 자가 면역질환 등에 대한 예방ㆍ개선, 감염성 장 질환과 설사, 위장염 등에 대한 예방과 치료용으로 인정 받았다”며 “올해는 500억원의 매출을 올려 30조원 규모의 글로벌 유산균 시장 공략에 본격 시동을 걸겠다”고 설명했다. 정가진 교수는 “김치 유산균만 잘 활용하면 전 세계 어디서나 현지 채소를 활용해 발효식품을 즐겨 먹을 수 있어 수출 효자상품으로 충분히 활용 가치가 있다”며 “김치 유산균이 또 다른 한류를 창출할 무기”라고 강조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전혼잎기자 hoi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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