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보장 제도의 목적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나타난 사회적 격차를 완화하는 것이다. 사회보장 제도는 노동시장에서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낮은 사람에게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즉 소득 재분배 기능을 수행하도록 설계된다. 이를 통해 더 가난한 사람은 덜 상품화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다.
소득 재분배 효과를 발휘해야 한다는 사회보장의 목표는 사회보험 제도에서도 관철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이래 매우 빠르게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건강보험 등 이른바 4대 사회보험 제도를 정비하고 보호 범위를 확대했다. 법률적으로 볼 때, 오늘날 4대 사회보험은 거의 모든 국민과 근로자에게 적용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는 여전하고 그로 인해 사회보험의 소득 재분배 효과 역시 미흡하다.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관한 이슈들은 흔히 비공식 고용의 문제로 다뤄진다. 비공식 고용이란 노동법과 사회보험을 적용받는 공식 고용에서 배제된 근로자를 뜻한다.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의 30~40% 정도가 비공식 고용에 해당한다. 그 대부분은 법률상 사회보험의 적용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과 고용보험에 미가입한 중소 사업장의 저임금 근로자와 비정규직들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근로자 중 국민연금 미가입자는 27.1%, 고용보험 미가입자와 적용제외자는 33.4%이다. 그런데 100명 이상 사업장의 정규직의 경우에 이 수치는 각각 1.4%와 3.2%인데 비해, 그 밖에 중소 사업장과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32.6%와 39.8%에 이른다.
비공식 고용 즉 사회보험 제도에서 배제된 고용은 근로자들 사이의 소득 격차를 악화시킨다. 국민연금과 고용보험이 근로자의 은퇴 또는 실직 시 소득 보장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의 비공식 고용은 근로자의 은퇴나 퇴직 이후의 가난과 연결된다고 말할 수 있다. 소득 재분배 기능을 기대하고 만든 사회보험 제도가 근로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현재의 소득 격차를 장래에까지 확대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모든 제도에는 사각지대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 규모가 너무 크다는 점에 우리나라의 비공식 고용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사회보험의 역설은 비공식 고용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의 존엄성을 해치고 근로 의욕도 약화시킨다. 우리가 일자리를 갖고자 노력하는 것은 노동을 통해 현재와 미래의 생활을 보장받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일자리가 사회보험에서 배제된 비공식 고용이어서 현재의 가난이 은퇴 후까지 연결된다면, 시민들에게 자신의 일을 갖기 위해 노력하라고 요구하기는 어렵다. 미래를 스스로 준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야만 일하는 사람들은 자부심을 갖는다. 오늘의 생활뿐만 아니라 노후 생활이 보장된다는 신뢰가 있을 때 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으며 자부심을 갖고 일할 것이다.
사회보험의 역설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비공식 고용을 사회보험 제도로 편입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쉽게 떠오르는 대안은 사회보험 제도를 회피하는 사업주를 적발하고 제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만으로 현 상황을 해결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사회보험 사각지대의 발생 및 확대에는 사용자의 사회보험법상 의무 불이행뿐만 아니라 저임금 근로자의 선택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당장 생활하는 데 필요한 가처분 소득이 부족한 근로자로서는 현재의 사회보험료 지출을 피하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저임금 근로자에게 사회보험료를 지원하는 등 이들을 사회보험에 편입하기 위해서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 점에 비춰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에서 10명 이하 사업장의 저임금 근로자에 대한 사회보험료(국민연금과 고용보험) 지원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반갑다. 그런데 이러한 정부 정책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특별법 등 분명한 입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그 정책이 향후에도 지속된다는 점이 드러나야 한다. 사회보험료 지원 사업 확대 과정에서 이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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