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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

입력
2015.01.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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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 날 원고를 쓰고 있자니 조금은 경건한 마음이 된다. 이 글은 2015년 새해, 미지의 독자들과 만나게 될 테니까. 통속적인 시간의 구획이 임의적이긴 하지만 ‘지금’은 그 핑계로 한숨 돌리며 꺼내 보일 만한 기억을 찾아 뇌 속 책장을 넘겨본다.

멈춘 페이지에서 나는 아주 작은 산사(山寺)에 있다. 미술을 하기 전에 잠깐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무작정 떠났던 곳이 네팔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던 것도 아니고 지인들과 같이 외국 잡지를 보다가 당시 국내에서는 흔치 않은 여행지였던 안나푸르나 트레킹에 대한 기사를 읽고 ‘여기로 가자’며 약속 했는데 막상 때가 되니 생업에 바쁜 친구들이 하나 둘 빠지고 혼자라도 갈 테다 라는 입장이 된 것이다. 그 결과 우여곡절 끝에 진탕 고생을 하면서 인도까지 여행은 길어졌고, 가는 곳마다 각기 다른 수행자들을 만나면서 내가 전혀 몰랐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크게 일어났다. 긴 사연을 줄이면, 집에 돌아와야 할 때쯤의 나는 이상해 보일 정도로 불교의 ‘비의(悲意)’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서 그러니까 신앙심이라기 보다는 착란에 가까운 상태로 작은 암자를 찾아가게 되었다.

칠순을 바라보는 마르고 꼿꼿한 할배 스님과 공양주 보살님이라고 부르는 할머니 한 분, 몇몇 신도, 제자가 간헐적으로 머무는 그곳에서 나는 며칠만 있으려다가 거의 1년을 지냈다. 여행 중에 주워듣고 마구 읽은 유식사상이니 기신론이니 하는 경전(經傳)에 대한 것을 포함해서 몇몇 질문들을 들고 간 나에게 노스님은 절대 책 한 권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말 그대로 욕만 바가지로 먹었다. 그런데 누가 잡지도 않는 곳을 박차고 나오지 못한 이유가 그분의 공력이었다고 생각한다.

한동안 ‘활자’가 허락되지 않았고 산사의 시계는 고단해서 그저 규칙을 따르는 것만도 바빴다. 꽤 시간이 흐른 뒤에 나에게 주어진 단 한 권의 책이 얄팍한 두께의 한문으로만 쓰여진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이다. 작은 암자에 무슨 일거리가 그리 많은지 종일 노동을 하고 짬을 내서 글 한 줄 옮겨 쓰고 옥편을 찾아 해석해보고 또 쓰고 한 줄씩 새기고 혼나고 한마디 겨우 얻어듣고 대들고 참선하고 그런 일상의 반복이었는데 지금도 때때로 입적(入寂)한 노스님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 그리고 그 시간에서 멀어지고 잊게 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고려 중기 지눌(知訥)의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과 신라시대 원효(元曉)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고려 후기의 야운(野雲)이 쓴 ‘자경문(自警文)’을 합쳐서 엮은 것이다. 그 중에서도 ‘계초심학인문’은 기본규율서로 언뜻 보면 초등학생들의 도덕책과 같다. 처음 불문에 들어온 사람이 가져야 할 몸가짐, 말하는 태도, 참회하는 법, 준칙, 선방에서 지켜야 할 청규(淸規)들로 심지어는 어떻게 세수하고 밥 먹고 신발을 놓으라는 것까지 짧은 글에 시시콜콜 적혀있다.

그런데 한편 이 초심자용 글이 세세히 뜻을 새기면 한 없이 어렵고, 이해를 했다고 해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고, 행하기는 더 어렵고, 그것을 유지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게다가 오계, 십계를 그냥 지키라고 하면 차라리 쉬운데 ‘지범개차(持犯開遮)’ 즉 지키고, 범하고, 열고, 막으라 한다. 수지(受持)하라는 항목도 납득이 안 될 판인데 그것을 때로 범하고 열어 쓰고 꽉 막으라니. 그러면 계율이 있으나 없으나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인지 이 구절을 ‘어떤 것이 계를 지키고 깨트리는 것인지 잘 알아서, 지계는 마음을 열어 반드시 지키고, 범계는 마음을 닫아서 막아야 한다’로 좁혀 해석하기도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덧 하루 해가 후딱 지나갔다.

어느 해나 기막힌 사건과 사고는 있었지만 지난 2014년은 ‘멘붕(멘탈 붕괴)’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세월호의 충격은 다른 각도로 반복되고 정신적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많았다. 모든 것이 수습되지 못한 2015년이 그리 밝을 리는 없겠지만 함께 사는 삶을 위한 공동의 규율에 대해 생각하고 지범개차하는 따뜻한 지혜의 마음이 커지길 바라고 있다.

이정민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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