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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의 길 위의 이야기] 기념일의 다음 날

입력
2015.01.01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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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찍 집을 나와 길을 걷는데, 평상시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비단 이른 시간이 가져다 주는 기이한 분위기 때문은 아니었다. 여기저기 쓰레기들이 널려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바닥에 누워 있던 전단지가 휙 몸을 들었다 잽싸게 납작 엎드렸다. 간밤에 사람들이 토를 해놓은 흔적도 눈에 띄었다. 터지지 않은 폭죽과 형형색색의 포장지가 군데군데 버려져 있었다. 어제는 기념일이었고 밤새 불사른 열정이 길 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몇몇의 환경미화원들이 바삐 움직이며 그 잔해를 거두고 있었다. 30분만 늦게 나왔어도 볼 수 없을 광경이었을 것이다. 내가 잠든 사이에 매일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부랴부랴 편의점에 들어가 따뜻한 캔 커피를 몇 개 샀다. 봉지에 담아 아저씨께 건네니 환히 웃으신다. “힘드시죠?” “다 힘들지. 우리는 지금 힘들고 자네는 이제 회사 가서 힘들 거고.” 아저씨의 말에 옆에 있던 아저씨가 웃으며 말을 거든다. “그래도 바깥일이 더 힘들긴 하지. 더워도 추워도 우리는 새벽에 길에 나와야 하니까. 이렇게 기념일 다음 날엔 몇 배로 더 힘들고.” “한 가지 좋은 게 뭔지 알아? 우리는 청소하면 동네가 깨끗해지는 게 보이잖아.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는 게 없는 일이 어디 한두 가지야? 그에 비하면 이 일은 양반이지.” 기념일의 다음 날은 폐허다. 그 허허벌판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일이야말로 기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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