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새해가 밝았다. 보통 한 해의 마지막 날에는 그해에 못다 이룬 꿈, 아쉬웠던 일, 소홀했던 사람들이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다이어리를 보고 그해의 첫날에 써둔 ‘투 두 리스트’(To-do List)를 읽은 뒤 얼굴이 벌게 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작과 끝은 이렇게나 다르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 하기는커녕, 첫날의 원대한 포부는 온데간데없고 순식간에 스스로가 부끄럽고 초라해지기 일쑤다. 포부가 실현되지 않아서 부끄럽다기보다는 그것을 한동안 잊고 지냈기에 더 부끄러운 것이다. 그래서 첫날이 가진 설렘은 마지막 날에 와서야 비로소 후회의 형식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마지막 날의 다음 날은 다름 아닌 첫날이다. 새해에는 새해에 걸맞은 계획이 필요하다. 그래서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갈 때, 사람들은 후회는 잠시 잊고 새사람이 되어 다가올 날에 미리 가 있어보는 것이다. 눈을 감고 손을 모으며 ‘직전’의 순간에 온몸과 온 마음을 맡기는 것이다. 작년이 될 올해를 반성하고 몇 초 후에는 올해가 될 내년에 모종의 기대를 품어보는 것이다. 작년에 쓴 다이어리의 첫 장을 펼치니 이렇게 쓰여 있다. “조금만 울자.” 이 다짐은 지켜지지 못했다. 울 수밖에 없었던 순간, 울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들이 유독 많았다. 다이어리를 펼쳐 올해의 목표를 적는다. “많이 웃자.” 올해의 마지막 날에는 이 말을 보고 새해의 첫날이 밝아오는 것처럼 밝게 웃었으면 좋겠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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