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소매점 단속 적발 사례 없어 '단골에만 보루 판매'는 처벌 못해
평소에 담배 ‘디스플러스’(2,100원)를 피우는 대학생 한모(31)씨는 올 연말 스트레스가 많다. 집 근처 편의점이 세 곳이나 되지만 모두 “매진”이라며 팔지 않아서다. 급한 대로 2,500원짜리 다른 담배를 사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구하기 힘들 때도 있다. 한씨는 “이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다”며 “가게 주인들이 담뱃값 인상 시점 이후 팔면 갑당 2,000원 이상 이익을 볼 수 있으니 담배를 쟁여놓고 팔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내년 1월1일 담뱃값 인상을 앞두고 담배 품귀 현상이 막판 극성을 부리고 있다. 하지만 그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소매점 매점매석에 대한 정부의 단속 실적은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3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기재부는 지난 16일부터 담배 매입량 제한(104%) 규제를 풀어주면서 각 지방국세청, 광역지방자치단체, 지방경찰청과 함께 정당한 사유 없이 담배 판매를 기피하는 업주들에 대해 단속을 벌였지만 지금까지 적발 건수는 전혀 없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소비자 신고 80여건을 받아 현장 조사에 나섰지만 대량 재고를 쌓아두고도 판매를 거절한 사례는 없었다”면서 “품귀 현상의 원인은 소매점의 매점매석이 아닌 수요 급증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당수 흡연자들은 여전히 의구심을 제기한다. 진열대에 담배를 쌓아두고도 한 갑 이상은 팔지 않는 곳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단골 손님에게는 보루 단위로 담배를 팔면서도 일반 손님에게는 아예 담배를 팔지 않거나 한 갑씩만 파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런 ‘손님 차별’은 매점매석이 아닌 고객 관리 차원이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일각에선 가격 인상 전후 포장지를 달리 하거나 가격표를 붙이는 등의 대응책 마련에 정부가 소극적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기재부 관계자는 “외국 회사는 정부가 포장지 교체 등을 강제할 수 없고, 제조 공정이 자동화돼 갑자기 포장지를 바꾸거나 가격표를 붙이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해명했다.
흡연자 커뮤니티 아이러브스모킹 대표 이연익씨는 “정부가 지난 9월부터 물량공급 제한을 둔 것은 소비자들이 담뱃값이 오른 후 담배를 구입하게 만들어 세수를 더 확보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면세점과의 큰 가격 격차도 논란거리다. 당장은 면세점 판매 가격이 동결돼 시중 담배의 41% 수준(현재는 74%)으로 떨어져 사재기 등 부작용이 속출할 수 있는 탓이다. 이에 따라 KT&G는 면세점에 공급하는 담배 가격을 다음달 중에 인상하기로 하고 인상 폭과 시기를 검토 중이다.
한편 정부는 내년 초 KT&G등 담배 제조사를 상대로 재고 물량 현황을 점검해 서류상으로는 올해 반출로 해 놓고 실제 반출은 내년에 해 인상된 세금을 물지 않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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