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터미널에서 표를 사려고 줄을 설 때, 앞사람 옆으로 슬쩍 끼어드는 사람들을 간혹 본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지하철이나 시내버스 승강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새치기다. 새치기란 ‘일이나 줄의 순서를 어기고 남의 앞자리에 끼어드는 일’이다.
새치기는 반칙이다. 축구에서는 이를 오프사이드라고 한다. 자신의 편이 공격 진영에서 상대방의 최후방 선수보다 앞쪽에 위치해 있을 때, 즉 골키퍼를 제외한 상대편보다 상대방의 골대에 더 가까이에 있을 때, 그 선수가 공을 받으면 오프사이드 반칙에 걸린다. 다시 말해 공격수가 최후방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오프사이드 반칙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선수에게 패스를 할 때 오프사이드 반칙을 범하는 것이다.
우리는 운동경기를 지켜볼 때마다 반칙이 예사로 이뤄짐을 본다. 이는 쉽게 상대를 제압하고 이기려는 습성 탓이다. 하기야 반칙이 어디 운동경기에만 있는 것일까? 지금 이 시간, 나와 우리의 일상의 삶 속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살림살이, 국정운영, 국가간의 무역이나 영토분쟁 등 수없이 많은 부분에서 반칙은 끊이질 않는다. 특히 우리 정치사에서 반칙을 수없이 본다. 이승만 대통령의 3ㆍ15 부정선거에서부터,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 및 유신독재, 전두환 노태우의 12ㆍ12 군사반란과 부정부패 등 반칙의 역사로 얼룩졌다. 이로 인해 이승만은 하야해 국외로 쫓겨나고, 박 대통령은 부하의 총탄에 비명횡사 했으며, 전두환ㆍ노태우 대통령은 감옥에 갔다 오고 재산은 몰수당했다. 모두가 준엄한 반칙의 대가인 것이다.
이처럼 특권과 반칙은 정치에서부터 출발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지난해와 올해는 국정원의 대선개입사건이 큰 반칙사건으로 얼룩졌다. 하지만 관련자들을 보호하려는 의도인지 계속해서 반칙이 나온다. 말하자면 반칙이 반칙을 낳고 있다. 채동욱, 윤석열, 권은희 등은 반칙의 피해자이고, 전 서울경찰청장, 국정원 여직원, 전 국정원장, 그 외 관련자들은 반칙의 수혜자들이다. 반칙의 횟수가 많아질수록 반칙의 대가는 클 것이다.
올 한해 빼놓을 수 없는 큰 반칙으로 세월호 참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는 2014년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뒤흔든 초대형 사고였다.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승객 476명 중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세월호 참사는 해운사의 위법 운항과 해경 및 정부의 총체적 부실이 일으킨 최대의 반칙사고이자 최악의 인재(人災)였다.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거론된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 및 문건유출 논란은 연말 정국을 강타했다. 사건의 논란은 정부 핵심부의 기밀문서 유출이라는 대형사고와 함께 비선라인의 ‘국정농단’ 의혹, 나아가 대통령 측근 간의 ‘권력암투설’로 확산됐다. 이것 역시 대형 반칙사건의 하나로 꼽힌다. 또 헌재 결정으로 통진당이 해산되는 일이 벌어졌다. 우리 헌정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그간 정부는 통진당의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의 이념을 추종한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통진당은 새로운 진보적 이념을 내세우고 있을 뿐이라고 맞섰다. 이 건도 어느 한쪽이, 또는 양측 모두가 반칙을 낳는 사건일 수 있다.
우리 인생도 그렇다. 올 한해 나의 인생은 어떠했는가. 필자 역시 삶을 반칙으로 살아가려는 오프사이드 인생이었다. 반칙을 써서 돈을 벌려는 사람들, 예컨대 강도, 절도, 사기, 횡령으로 한 밑천 잡으려 하는 사람들 때문에 사회는 온통 오프사이드로 치닫는다.
반칙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넓게는 도덕률, 좁게는 법률, 법칙, 규칙, 조례, 기타 규범 등이 주어진 환경에 따라 보이지 않은 반칙거미줄이 있다. 이에 걸리지 않게 산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인생을 오프사이드로 살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성공한 사람이라도 반칙을 통해 승리를 얻었다면 승리가 오래가지 못할 뿐 아니라 어떤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승리를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원칙을 어기고 반칙을 통해 이긴 승리, 그것은 한 때의 승리일 뿐 영원한 승리가 되지 못한다.
신영규 한국신문학인협회 사무국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