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광이다. 36년째다. 실력은 젬병이다. 그래도 되게 좋아한다. 컨디션이 좋으면 이기고 안 좋으면 만방으로 깨진다. 더 솔직하게는 차분하면 이기고 흥분하면 진다. 상대의 수를 따라두면 지고 내 길을 가면 가히 판의 모양과 가치가 볼만하다. 후회도 없다. 상대의 묘수에 감탄할 여유도 있고 져도 패배를 능히 인정할 수 있다. 바둑이나 인생이나 자기의 길을 후회 없이 가는 게 맞다.
끝내기가 있다. 도처의 전장이 마무리돼 마지막 남은 전리품을 차례로 챙기고 수습하는 걸 일컫는다. 이것이 오묘하다. 두 번만 잘못 두면 승패가 허망하게 갈린다. 대충 봤다가는 큰 코 다친다. 대가들은 기가 막히게 끝내기의 묘수를 찾아낸다. 상대방이 절대로 받지 않을 수 없도록 선수를 치고 빠져서 큰 데를 찾아 둔다. 그 집중력이 가히 놀랍다.
극단에서는 끝내기가 송년회다. 6시간은 족히 한 것 같다. 한 해 동안 공연했던 영상과 사진을 함께 보고 장기를 뽐내고 선물도 맞바꾸고 각 기수별로 촌극을 경연하고 초간단영화제도 벌였다. 촛불을 들고 각자 돌아가며 서로에게 덕담도 주고받았다. 송년회 준비팀은 근 두 달가량 아이디어를 내고 회의를 하며 갖은 준비들을 다 했다. 먹고 마시면 될 송년회에 연극 한편 만들 공력이 다 들어갔다. 그리고 다 같이 행복했다. 끝내기가 제대로 좋았다.
연극은 언제나 할 수 있지 않다. 불러주고 선택돼야 할 수 있다. 그러니 기다리고 버티는 게 일이다. 그런데 버티기도 잘 안 되고 불안해지는 시기가 유독 이 즈음이다. 한 해를 살기는 살았으나 뚜렷이 많은 작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자신이 검증된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조바심이 난다. 금세 나이도 한 개 더 보태질 것이 아닌가. 그런 불투명과 불확실성이 얼굴에 그늘을 만든다. 그늘, 싫다. 그래서 송년회에 기를 쓰고 집착한다. 정신없이 송년회를 준비하고 참여하다 보면 어느 새 무대에서 행복해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고 그 포만과 회한에 며칠 지내다 보면 1월과 자연스럽게 맞물려 넘어가진다. 그럼 또 살아진다.
하도 닦달을 해선지 처음에는 쭈뼛거리던 선배들도 이제는 여지없이 까불며 잘들 논다. 갈수록 정교해지고 프로그램의 질도 높아간다. 맞다. 하다 보면 더 좋아지고 재미가 붙는다. 역시 배우는 무대에 서야 한다. 연출은 연출을, 작가는 무대를 그려내야 한다. 그 맛에 산다. 바둑은 끝내기로 판이 끝나지만 삶의 끝내기는 끝이 없이 이어진다. 빙 둘러서서 한 명씩 마주보고 이야기하며 돌았다. 너는 내년에 더 좋아질 거야. 우리는 더 좋아질 거야. 해도 해도 그 말이 질리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 가슴 속에 알 수 없는 희열이 벅차게 밀려왔다. 내면이 단단해지고 좋은 기대감으로 꽉 찼다. 우리는 그 순간 서로에게 희망이자 빛이었다.
끝이 좋으니 역시나 다 좋다. 사실 올 한해는 포석의 방향을 좋게 봐야 좋다고 잡았다. 일단 긍정하고 나쁘면 안 보려고 했다. 입에 담지 않으려고 노력도 했다. 좋은 것만 보니 좋은 것만 보였다. 그렇게 잘 갔다. 그러다가 중반전 이후 갑자기 사방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내 식대로 잘 안됐다. 나의 꼼수는 여지없이 들키고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숨을 고르지 못한 채 흥분했다. 나를 탓하고 못지않게 남도 탓했다. 그러다 보니 기세도 몸도 다 꺾였다. 졸도도 했었고 이석증에 걸려 지구도 핑핑 돌았다. 그래서 사실 12월 한 달은 거의 집에 틀어박혀 살았다. 우울했다. 그런데 그 놈을 단번에 날려버릴 끝내기를 했다. 그러고 나니 다시 좋게 봐야 좋다를 외칠 기력이 생겼다.
시작, 중간, 끝, 어디인들 중요하지 않을까. 허나 시작은 다시가 된다. 되돌아가 새 출발할 여지가 있다. 중간도 만회가 가능하다. 번거로워도 수정하고 조율하면 정리가 된다. 끝은 다만 끝이다. 잘 끝내는 것 말고 딴 도리가 없다. 잘 끝내지 않으면 정말 끝이 난다. 잘만 끝내면 그 안에 이미 새로운 시작의 싹이 튼다. 다시 처음으로 이어질 것은 자명하다. 끝을 잘 내야 한다. 올 한 해의 마지막 하루가 야무지게 남았다. 끝내기에 집중하고 싶다.
고선웅 연극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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