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 나던 지난 19일 새누리당의 친박 중진의원 7인을 청와대로 불러 비공개 만찬 회동을 했다고 한다. 친박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 등 이름이 거론된 의원들은 오랫동안 박 대통령을 보좌해온 핵심 친박 인사들이다. 회동에서 오간 얘기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청와대 문건 유출 파동에 따른 국정 쇄신, 인적 쇄신, 공무원연금개혁 처리방안, 경제살리기 등 다양한 현안들이 논의된 것으로 보도됐다. 회동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진 당사자들은 “모르는 일”이라 하고, 청와대도 “아는 바 없다”는 식으로 눙치고 있지만 똑 부러지게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떳떳하지 못한 자세가 이 회동의 전반적인 부적절함을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이 누군들 만나지 못할 게 뭐 있으며, 무슨 이야기인들 듣지 못할 게 뭐 있겠는가. 구중궁궐에 있는 대통령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들을 불러 식사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지 않은가라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듣고 싶은 얘기만 할만한 인사들이라면 ‘소통’이라 말하기도 민망하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진언(進言)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국정 현안이 당 지도부가 배제된 채 친박 핵심 인사들과 은밀히 논의돼야 하느냐는 데 이르러서는 문제의 심각성이 두드러진다. 김무성ㆍ이완구 대표 체제의 국회 운영이 미덥지 못하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 당 안팎에서 대통령의 의지, 선호가 어디에 실려있는지 셈을 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지도부는 위축되고, 청와대와 연결된 친박 비선의 입김이 세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과 친박인사들의 회동 이후 김무성 대표의 지도력과 관련한 당내 갈등 분출은 그래서 예사롭게 볼 수 없다. 최근 김 대표가 내정한 여의도연구원장 인사에 대해 친박 쪽의 거센 반발이 있었다. 청와대의 거부 기류를 친박에서 뒷받침했다는 말이 파다하다.
어제 친박 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 오찬에서는 당직 인선뿐만 아니라 당청 관계, 개헌발언 등에서 김 대표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당 사유화”, “자기세력 과시”, “전횡”, “당청 관계가 전례 없이 금이 가고 있다”는 등 거센 비판이 나왔다. 위계질서가 뚜렷한 여당 내에서 보기 드문 공개적 지도부 흔들기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과 친박 ‘성골(聖骨)’ 인사들의 회동에 이어진 친박 주류와 비박 비주류 지도부의 당내 갈등, 계파주의의 급격한 표출이 우연의 일치로만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역사에서 리더가 힘을 잃고, 사분오열된 조직이 잘 됐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소통과 포용력에 대한 대통령의 한계를 보여준 친박 회동이 여권 내 불협화음을 부추기고, 결국에는 국정의 난맥상을 이끌게 될 것이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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