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이 시간당 8,000원은 돼야 하지 않나요”, “나의 장애로 내 가능성을 단정짓지 말아주세요”, “5년 만에 돌아온 백수 신분, 책이나 실컷 읽고 싶어요.”
양띠해 새해를 맞는 2030의 처지는 제각각이다. 대학생이 됐지만 생계형 알바에 시달리면서 사회의 쓴 맛을 본 휴학생, 농성 현장에서 사랑을 만난 성소수자 활동가, 대기업을 그만두고 재취업한 직장인, 연극을 통해 세상과 만나려는 장애인,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둔 자발적 백수….
2014년을 치열하게 살았던 그들이 되돌아 본 한 해와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2015년의 새해 소망을 담았다.
휴학생 조윤(20) 생계형 알바는 언제까지?
지난해는 대학 새내기로 시작했지만 캠퍼스의 낭만보다는 사회의 쓴 맛을 본 한 해였다. 연간 660만원에 달하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주일에 3,4일은 내리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3~5월엔 하루 10시간씩 3일간 백화점에서 판매직 알바를, 7월부터 지금까지는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일주일에 목,금,토,일 나흘 동안 매일 6시간씩 일을 한다. 시간당 최저임금 5,21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5,000원의 시급을 준 백화점에서는 별다른 이유 없이 해고 당했다. ‘근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해고 사유가 납득이 안돼 도움 줄 곳을 찾던 중 알바 노조를 알게 돼 도움을 요청했다. 알고 보니 최저임금만 못 받은 게 아니었다. 일주일에 15시간 일할 경우 추가로 지급해야 하는 주휴수당도 받지 못했던 것이었다. 가만히 있었으면 몰랐을 권리를 알바 노조의 도움으로 알게 됐고, 결국 3개월간의 주휴수당과 받지 못한 최저임금까지 쳐서 월? 68만원을 받았다.
그렇게 고된 알바를 했는데도 결국 2학기 등록금을 마련 하지 못해 휴학을 했다. 알바를 해서 등록금에 생활비까지 번다는 건 불가능한 얘기다. 서울 은평구의 집에서 서울 구로구의 학교까지 교통비로만 하루 3,000원 넘게 든다. 지금 일하는 빵집에서 나흘 일해봐야 월 50만원을 버는데 교통비, 식비, 책값 내면 끝이다. 학교 다니는 게 부담스럽다. 소모임, 학회 등 3월 학기 초3에 잠깐 발 담근 학내 모임에는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그런데도 일부 어른들은 속 편한 소리를 한다. “알바를 좋은 사회 경험이라고 생각하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이가 없다. 우리 세대는 사회 경험을 쌓기 위한 게 아니라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한다.
올 해도 내 생활은 크게 변할 가능성은 없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온갖 알바를 다 할 것이다. 올해 최저임금은 5,580원으로 올랐지만 내 경우 한달 2만~3만원 더 받는 수준이다. 쥐꼬리만큼 오르는 최저임금이 문제가 아니라 교통비가 200원이 오르는 게 더 무섭다. 최소한 최저임금이 시간당 8,000원은 돼야 내가 일을 하면서도 최소한의 ‘캠퍼스 라이프’를 누리게 되지 않을까.
낙타(28ㆍ가명) 동료애를 확인한 성소수자 활동가
지난해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뜨거웠던 1년이었다. 6월 서울 신촌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8월 서울 종로에서 열린 친구사이 20주년 퍼레이드, 11월 서울시민인권헌장 공청회장에서 동성애자 혐오 단체들과 끊임없이 맞닥뜨려야 했다. 과거엔 기독교 단체들이 “동성애에 반대한다”며 우리와 충돌했지만 이제는 훨씬 조직적ㆍ체계적으로 반대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앞으로 더 힘들 일이 많아질 거란 생각에 한숨이 나오기도 하지만 가슴 벅찬 순간도 있었다. 지난달 서울시가 동성애 반대 단체들에 밀려 성소수자 보호 조항이 포함된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선포하지 않은데 항의하며 서울시청 본관을 6일 동안 점거했을 때였다. 오프라인에서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밝히지 않고 트위터 등 SNS에서만 활동하던 성소수자들이 서울시청 점거 현장에 와서 얼굴을 드러낸 채 지지 발언을 하고 갔다. 그동안 쉽게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던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당당하게 밝히고 함께 농성에 참가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여름부터 새롭게 연애를 시작했다. 같은 단체 내에서 사귀게 된 친구여서 공통의 관심사를 나눌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시청 농성 때에도 함께 건물 바닥에서 밤을 지새며 힘이 돼 줬다. 지난해 ‘동성애자들이 이 사회에 존재한다’는 걸 알렸다면 올해는 어떻게 우리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될 것 같다.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빈곤계층, 노동자, 장애인, 여성 등 많은 사회적 소수자들과 함께 연대하는 방안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싶다.
정현수(29) 권위적인 대기업에서 탈출한 이직자
지난해 1년여간 다니던 대기업 식품제조회사를 그만두고 생애 두번째 취업준비생으로 살았다. 첫번째 취업준비생 시절 동경했던 대기업은 막상 입사하고 보니 드라마 ‘미생’의 배경인 무역회사 ‘원 인터내셔널’ 못지 않게 권위적인 조직이었다. 훨씬 더 잦은 야근에 허구한 날 소리지르는 상사들, 내가 하지 않은 일인데도 책임져야 하는 조직 분위기. 결정적으로 일 자체가 재미 없었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두 달 간 유럽 여행을 다녀와 재충전을 하고 다시 이직 준비를 시작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직 준비는 즐거웠다. 첫번째 취업준비 때와 달리 여유가 생겨 다른 취업준비생들과 함께 스터디도 하고 자기소개서도 함께 썼다. 부모님의 기대와 사회적 시선을 의식해 대기업에 입사해야 한다는 강박이 사라졌다. 대신 ‘나에게 어떤 일이 잘 맞고, 무엇을 해야 재미있을 지’를 고민하며 회사를 선택했다. 여행사, 출판사 등 관심 가는 회사에 지원을 하게 됐다. 지난해 5월 이전 직장 보다 연봉 1,000만원 가량 적은 한 교육전문기업에 입사했다. ‘스펙’만 따지면 남들만큼 좋은 편은 아니어서 20여곳 회사에 지원한 끝에 유일하게 면접 기회가 주어진 한 회사에 최종 합격했다. 지금은 행복하다. 새로운 콘텐츠 개발을 고민하고 분석하는 과정이 적성에 맞는다. 야근이 줄어든 대신 개인 시간이 늘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대학시절 동아리연합회 회장을 할 정도로 모임과 조직을 좋아하는 특기를 살려 학회 졸업동문회 회장도 맡았다. 새해 계획도 많이 세웠다. 이력서에 쓰는 스펙용이 아니라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서다. 독일어나 스페인어 중 하나를 배우는 게 목표다. 또 올해는 적어도 두 차례 어디로든 여행을 가고 싶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떠난 여행에서 나를 돌아보게 된 소중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정원희(25) 취업 준비중인 뇌성마비 장애인
지난해는 연극이냐, 취업이냐 두 길에서 고민했던 한 해였다. 그동안 장애인의 성과 사랑을 다룬 연극을 해 왔다. 장애인이 하는 연극이라 박수 받는 것보다는 연극 자체의 작품성을 평가 받고 싶었다. 무대를 만들 때마다 뿌듯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연극인이기도 하지만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취업준비생이기도 하다. 연극과 관련된 분야에 취업해 사회 생활을 하고 싶어 기업 입사를 준비했지만, 새삼 장애인이라는 벽을 실감할 수 밖에 없었다. 면접때 “출퇴근이 가능하냐”고 묻는 면접관도 있었다. 전동휠체어를 타야 하는 뇌병변 2급 장애인이지만 나는 혼자서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결국 3~4개 기업에 지원해 최종 면접까지 갔지만 매번 마지막에 고배를 마셨다.
올해도 쉽지 않은 한 해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능성’을 말하고 싶다. 사람들은 뇌성마비 장애인의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본다. 장애인은 학교만 잘 다녀도, 혼자서 생활만 잘 해도, 친구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식이다. 그 정도로 충분하기 때문에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다는 세상의 시선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장애를 갖고 대학에서 공부한다고 하면 오히려 신기해한다. 이런 시선이 오히려 장애인이 더 큰 꿈을 꾸는걸 막는 것 같다. 나의 한계를 단정짓지 말고, 내 꿈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장승아(가명ㆍ29) 5년 일한 회사 떠나 올해부터 백수
나는 백수 신분으로 새해를 맞는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취업한 첫 직장에서 5년을 보내고 회사를 그만뒀다. 작은 IT 경영컨설팅 회사에서 5년간 비슷비슷한 일을 하며 흥미가 고갈된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프로젝트 때마다 야근에 시달리며 몸이 크게 축난 것도 작용했다. 보통 3~4개월씩 걸리는 프로젝트에서 중간 보고 이후부터는 야근이 일상이었다. 퇴근시간은 빨라야 밤 10시, 새벽 1시가 넘어 퇴근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재작년에는 자궁기형종으로 수술을 받았다. 직원 10여명의 작은 회사인데도 부정맥 등 자율신경계 이상으로 퇴사한 사람이 둘이나 될 정도로 업무 강도가 셌다.
게다나 나는 항상 ‘을’이었다. 몇몇 거래처는 정말 ‘갑질’을 했다. 모 대기업은 오후 5시에 프로젝트 보고서를 받고는 “내일 아침에 봅시다”라고 했다. ‘수정 사항을 밤새 보완해 내일 아침에 보고해 달라’는 뜻이다. 수정할 여유도 주지 않고 매일같이 프로젝트 진행사항 보고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요즘 논란이 된 ‘갑의 횡포’ 문제 때문에 대체적으로 갑질이 줄었지만 변하지 않는 곳도 많다.
지난해에도 여름 휴가 없이 일하다 회사에 퇴사 의사를 밝히고 쉰 적이 있다. 숨돌릴 틈 없이 일하다 5년만에 처음으로 갖는 휴식이 달콤하다. 점심시간까지 자다 일어나 밥 먹고 드라마를 보고 빈둥거리며 하루를 보낸다. 그동안 일에만 매몰돼 살아왔기 때문에 좁아진 세상에 대한 시각을 넓히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얼마전부턴 드라마 ‘정도전’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
편하긴 한데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다. 올해는 몸이 아프거나 갑자기 큰 돈이 들어갈 일이 터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걱정이 될 때마다 5년간 열심히 살아온 스스로를 믿어보자고 최면을 건다. 당분간 2~3개월 정도 푹 쉬면서 여행도 가고 책도 읽을 생각이다. 그동안 여유가 없어서 읽지 못한 스티븐 킹 전집이나 질러서 읽어볼까 생각 중이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