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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있던 방황의 시간들 어디에 담아 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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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있던 방황의 시간들 어디에 담아 뒀나요

입력
2014.12.30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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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되지 않은 십대들

같은 듯 다른 일상의 순간들 포착

사라지고 폐기되는 시간을 얘기

박솔뫼는 장편소설 '도시의 시간'에서 단단한 얼음처럼 응고된 시간, 고층 건물 뒤에 폐기된 도시의 시간을 그린다.
박솔뫼는 장편소설 '도시의 시간'에서 단단한 얼음처럼 응고된 시간, 고층 건물 뒤에 폐기된 도시의 시간을 그린다.

어른이 됐다는 징표 중 하나는 시간이 물처럼 흐른다고 의심 없이 믿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 시간은 흐르지 않고 고여 있었다. 액체 보단 고체에 가까웠고 언제 어디서든 목소리를 높이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시간이 존재한다는 걸 자주 잊었다. 시간이 흐르는 소리 보다 숨소리가, 얼음 녹는 소리가, 땅이 마르는 소리가, 벽지가 퇴색하는 소리가 훨씬 크게 들렸던 때가 누구에게나 있다.

소설가 박솔뫼씨의 장편 ‘도시의 시간’(민음사)에는 그 이상한 한때가 선명하게 포착돼 있다. 대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의 주인공은 우나와 우미 자매, 배정, 그리고 ‘나’다. 고등학교든 대학교든 어딘가에 속해 있을 나이들이지만, 네 사람 모두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일본에서 살던 우나와 우미는 아버지가 죽은 후 한국에 왔지만 생계 때문에 정신 없는 어머니의 무관심으로 집에서 소일한다. 삼수생인 배정은 재수학원에 다니지만 대학에 들어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나’는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배정과 같은 학원에 다닌다.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는 어린 얼굴에,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학교 안 가고 여기서 뭐하냐고 묻지만 “안 맞아서요”란 말 외엔 돌려줄 것이 없다.

태평한 세 사람과 달리 우미는 홀로 초조하다. 제때 학교를 졸업하고 가장 예쁜 시기에 연애를 하고 난자가 늙기 전에 결혼하길 바라는 우미에게는, 시간이 흐르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다. 반면 ‘나’와 우나의 시간은 단단한 얼음처럼 흐르지 않는다. 초조할 것도 안타까울 것도 없다. “안타까운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뭐가 안타깝지? 아무것도. 나는 지금이 너무 선명하고 안타깝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대로 그림자처럼 벽에 붙어 있어도 모든 것이 선명해.”

두 사람은 주로 우나의 방 침대에 눕거나 기대 하루를 보낸다. 딱 한 장의 음반을 내고 사라진 포크 가수의 흔적을 좇는 우나와 그런 우나를 지켜보는 ‘나’. 벽을 보고 있는 우나와 눈을 감고 있는 우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속눈썹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시간 흐르는 소리를 삼켜 버리고, 응고된 시간은 얼음처럼 쩍 쪼개지며 틈을 벌린다. “그렇게 누워 있다 보면 시간은 잘 갔다. 가는지 모르게 가 버려서 원래 없었던 것이 아닌가 우리는 그냥 어두움에 던져진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 그곳에서는 시간이 잘 가기 때문에 나중에는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어떤 것이 시간인지 알 수 없어져 버렸다.”

그러나 단단하고 투명했던 얼음은 녹아 버리고 시간은 흐르기 시작한다. 배정은 대학에 들어가고, 우미는 일본으로 돌아가 또래의 고민에 동참하고, 한적했던 도시는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쇼핑센터와 프랜차이즈 카페들로 채워진다. 그리고 우나의 사망 소식이 들린다. 우나와 ‘나’가 함께 보낸 시간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시간, 고층 건물 뒤에 폐기된 시간, 도시의 소음을 뚫고 속눈썹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 불현듯 다시 덮쳐오는 시간이다.

‘도시의 시간’은 최근 가장 주목 받는 젊은 작가 중 한 명인 박솔뫼의 세 번째 장편 소설이다. 글보다는 소리나 장면에 가까운 박솔뫼의 소설을, 서평가 금정연씨는 “따라 부를 수 없는 노래”라고 표현했다. 노래를 따라 부르기 힘든 이들에 의해 그의 소설은 자주 “방황하는 청춘의 이야기”라는 문구로 설명된다. 작가와의 짧은 인터뷰에서 그 설명이 싫지 않느냐고 물었다. 당신을 통해 요즘 세대를 읽으려는 시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마치 소설 속 ‘나’와 우나처럼 답한다. “그냥..각자의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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