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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지화 아들 사고로 숨진 다음날도 회의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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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지화 아들 사고로 숨진 다음날도 회의 참석

입력
2014.12.3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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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지화(令計劃) 중국공산당 통일전선공작부장은 아들이 페라리 교통 사고를 내 숨진 그 다음날에도 평소처럼 공식 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을 철저히 은폐하기 위한 계획(計劃)적인 행보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30일 중국경제주간에 따르면 링 부장의 아들 링구(令谷)는 2012년3월18일 새벽 4시10분 10억원대 고가 스포츠카인 페라리를 운전하다 베이징(北京)시 바오푸쓰(保福寺)교를 들이받는 교통 사고를 냈다. 이로 인해 당시 24세였던 링구가 현장에서 사망하고, 동승했던 반나체 차림의 여성 2명도 큰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중국 국내 매체에는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이는 당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비서실장(중앙판공청 주임)이었던 링 부장이 경찰 검찰 법원 등을 총괄하고 있던 저우융캉(周永康) 중앙정법위원회 서기에게 사건의 은폐를 부탁한 뒤 강력한 보도 통제를 실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18차 당 대회)를 앞두고 최고 지도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진입을 노리던 링 부장은 아들의 사고로 자신의 정치적 경력에 흠집이 생길 것을 우려, 이를 덮는 데 총력을 기울인 것이다.

링 부장은 특히 사고 다음날인 2012년3월19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13차 전국민정회의에 평상시처럼 참석했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관영 CCTV 화면 등을 통해 확인됐다. 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경우 의심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한 것이다. 아들의 죽음도 그의 권력욕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페라리 교통 사고의 진상은 3개월 뒤 해외에 본부를 둔 중화권 매체를 통해서 폭로됐다. 누가 이를 제보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후 정치적 궁지에 몰린 링 부장은 2012년9월 중앙판공청 주임에서 한직인 통일전선공작부장으로 좌천됐다. 이러한 과정을 주도한 이들 중 한 명이 바로 당시 부주석이었던 시진핑(習近平) 현 주석이다. 한 때 부러울 것 없는 문고리 권력을 누렸던 링 부장은 개혁ㆍ개방 이후 중앙판공청 주임을 지내고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하지 못한 첫 인사가 된 데 이어 이젠 감옥까지 가야 하는 신세가 됐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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