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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문화 수준 보여준 불협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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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문화 수준 보여준 불협화음

입력
2014.12.29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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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정 대표 직원 희롱 논란에 정명훈 감독 처우 문제까지 들썩

박현정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가 5일 운집한 취재진 앞에서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부정이나 부적절한 행동으로 물의를 빚은 지도급 인사들이 종종 그러하듯 이날 그가 허리를 굽힌 것은 석고대죄의 표식으로 비쳤다. 그러나 그것은 사과가 아니라 본격적인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별난 선전포고였다.

박 대표는 자신이 대표로 있는 조직을 가리켜 “동호회 수준의 문화를 가진 서울시향은 정명훈 음악감독의 사조직”이라고 폄하했다. 그는 또 “(직원들에 대한 나의) 인격모독적 언행에 대해 감사원과 검찰이 내리는 조치를 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맞섰다. 박 대표는 “’서울시향을 지키고 싶은 직원 17명 일동’이라는 명의로 나의 언행을 비난하는 메일이 배포됐지만 발신자가 불분명하다”면서 “서울시향 직원이 보낸 투서라기보다는 나의 사퇴를 바라는 서울시향 외부세력의 소행일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주장했다. 투서 작성자를 처벌해 달라는 그의 요구는 결국 자신에게 날아온 공을 되던진, 적극적인 자기방어이자 역공이었다.

박 대표가 폭언과 희롱을 일삼고 전횡을 일삼았다는 직원들의 투서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박 대표는 이를 일부 인정하면서도 그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나는 정치적 희생양”이라며 “사태의 배후에 정 감독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사태는 다시 정명훈 감독의 처우와 처신에 대한 문제로 확대됐다. 정 감독은 이전에도 연봉을 지나치게 많이 받고 개인 일정을 우선시한다는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다. 이에 정 감독은 “박 대표의 인권 침해 상황을 견딜 수 없어 서울시에 사의를 표명했다”며 반격을 시도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간담회에서 “정 감독에 대한 공격은 취임 직후부터 있었다”며 “정 감독처럼 서울시민이 사랑하는 지휘자를, 문제가 좀 있다고 해서 배제해 버리면 그 대안이 있느냐”고 되물으며 정 감독을 감싸는 태도를 보였다. 서울시향 무대에 초청된 세계의 1급 연주자들이 정 감독과의 연분으로 한국 무대를 택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정 감독이 취임한 뒤 서울시향은 120년 역사의 영국 클래식 음악축제 BBC 프롬스 무대에 아시아 교향악단으로서는 두 번째로 서는 등 활발한 행보를 보였다.

박 대표는 결국 29일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5일 그랬던 것처럼 이 날도 허리를 굽히며 “서울시향 이사회나 시의회가 더 많은 역할을 해달라”고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3분여 동안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시향의 비정상적인 운영은 견디기 힘들었다”며 “(시향이) 투명한 조직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서울시향 사태는 박 대표의 사의 표명으로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한국의 대표 교향악단에서 일어난 이 희한한 일에 서울시민은 착잡하고 씁쓸한 반응을 보이면서 실망감을 나타냈다. 효율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주의와, 창조성을 중시하는 문화단체를 각각 지배하는 정서의 충돌이 어떤 결과를 내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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