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급락하고 있다. 지난 6월까지만 해도 배럴당 100달러 이상이던 유가가 최근 60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올해 최고가에 비하면 거의 반토막이다. 당분간 급락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이는 아랍에미리트의 에너지 장관이 “유가가 배럴당 40달러가 돼도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입장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한 말에서도 뒷받침된다.
에너지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로서는 국제 유가의 급락은 언뜻 반갑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무조건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리비아와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이 국제 유가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해석과 함께 유가 급락으로 세계의 신흥국 경제가 연쇄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유가가 이렇게 급락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최근 유가 하락의 조짐에 관한 OPEC 대책회의에서 사우디가 감산을 거부하고 오히려 생산량을 늘렸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2~3년 사이 미국은 셰일혁명을 통해 원유 생산량을 대폭 늘림에 따라 세계 원유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반면 사우디는 세계 원유시장, 특히 미국 시장을 점차 잃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세계시장에서 석유 권력의 교체에 직면하게 된 사우디는 원유 생산량 감산보다는 가격 인하를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분석가의 말을 빌리면, “현 상황은 미국의 석유 업체들을 고사시키려는 사우디와 저유가를 감내하더라도 셰일오일 생산을 유지하려는 미국 사이의 힘겨루기”, 즉 ‘국제 유가 전쟁’에 들어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구 자원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지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사실 60달러 이하의 유가를 견딜 수 있는 국가는 사우디뿐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러한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도 물론 유가 급락의 충격으로 최근 주가가 다소 하락했지만, 달러화는 ‘나 홀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경제에서 유가 하락은 소비자 물가를 떨어뜨려 소비 증대와 경기 부양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국내 상황의 호전과 더불어 국제 정치에서도 쾌재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국제 유가의 급락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된 국가는 러시아, 베네수엘라, 이란 등 신흥 산유국들이다. 특히 러시아는 서방의 경제 제재와 유가 급락으로 인해 통화(루블화) 가치가 올해 들어 49%나 급락했고, 이로 인해 주가 폭락과 물가 급등을 겪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올 봄 크림반도를 합병한 푸틴 대통령에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 경고가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미국과 등을 지고 있는 베네수엘라, 이란 역시 통화가치 하락과 재정적자 확대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한 전략분석가는 “사우디가 (미국과의) 동맹을 소원하게 하지 않으면서 경쟁자와 적을 함께 견제하는 영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문제는 저유가가 지속될 경우 세계 경제는 결국 동반 침체할 것이고, 저유가는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이다. 유가 급락은 자원 수출국들에게 큰 타격을 주지만, 원유 수입국들에게는 고성장 궤도로 복귀할 기회를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부 국가들이 모라토리엄에 처하게 되면, 그 충격은 세계 금융시장을 통해 저유가 수혜국들로 확산될 것이다.
사실 최근 유가 급락의 속도는 단지 원유 공급의 확대에만 기인한 것이 아니라, 세계 경제의 불황에 따른 수요 급감에도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세계 1위의 에너지 소비국인 중국은 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지난 11월 석유 수입량이 전년도에 비해 6.7% 줄었다고 한다. 저유가가 저성장과 겹친 상황에서 세계 경제의 침체는 장기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물론 유가 하락 국면에는 우리나라처럼 에너지 해외의존도가 높으면서도 효율성이 떨어지는 경제는 상당한 이익을 볼 수 있다. 1980년대 후반 이른바 ‘3저 호황’과 유사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저유가로 인해 에너지 과소비가 조장되고 에너지 효율성 개선 노력은 소홀히 될 수 있다. 유가는 분명 다시 급등할 것인데, 그 충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최병두 대구대 지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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