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를 남기지 않아 유령 같았던 빈집털이범이 결국 꼬리가 밟혔다. 완전범죄의 걸림돌은 그의 ‘팔(八)자 걸음’ 때문이었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박모(47)씨를 상습절도 혐의로 구속했다고 28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해 2월부터 지난달 중순까지 13회에 걸쳐 서울 평창동, 논현동 일대 고급 빌라에 침입해 고가 외제 시계, 다이아몬드 반지, 밍크코트 등 1억여원 상당의 물품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박씨는 빈집을 물색해 잠금장치가 허술한 욕실, 주방 창문을 뜯고 들어가거나 건물 외부의 가스배관을 타고 발코니를 통해 침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씨는 보석 감별기나 금 성분을 측정하는 시약으로 돈이 되는 것만 훔치는 ‘전문가’다운 면모를 보였다. 박씨는 범행 당시 장갑을 껴 지문을 남기지 않았고, 추적을 피하기 위해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택시로 이동할 때는 현금으로만 지불하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경찰은 10월부터 범행장소 인근 폐쇄회로(CC)TV에 찍힌 박씨의 인상착의를 동종 전과자 1,200여명과 대조해 지난달 19일 신림동에서 박씨를 체포했다. 그러나 법원이 “피의자로 특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해 박씨는 다시 풀려났다.
영영 잡히지 않을 것 같던 박씨가 끝내 쇠고랑을 차게 된 건 그의 걸음걸이 때문이었다. 경찰은 CCTV 속 용의자가 팔자걸음에 부상으로 오른쪽 다리까지 저는 것에 착안, 지난달 24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걸음걸이 분석을 의뢰했다. 경찰은 이달 5일 ‘박씨가 CCTV 화면 속 용의자와 동일한 인물’이라는 결과를 통보 받아 박씨를 다시 붙잡았다.
조사결과 절도 전과 13범인 박씨는 절도로 1년간 징역을 살고 올해 7월 출소하자마자 또 빈집을 턴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적발된 것은 지난해 구속되기 이전과 출소 이후의 범행들이다. 박씨는 19일 검찰에 송치될 때까지 정신질환자 행세를 하며 진술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수법이 치밀하고 상습적으로 해왔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드러나지 않은 범죄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추가 수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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