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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ㆍTV 업고 '미디어셀러' 흥행 불황 출판계 신동력 될까 부메랑 될까

입력
2014.12.2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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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6권이 10위권 싹쓸이

시청자 관심 따라 홍보는 쉽지만

영상 파생상품으로 전락될 우려

최근 교보문고가 내놓은 2014년 도서판매 동향 보고서의 제목은 ‘아이러니한 소설의 해’다. 소설이 종합판매 1위를 차지하고 베스트셀러 10위권 안에 소설이 6권이나 포함됐지만 판매권수는 전년 대비 3.2% 감소했고 분야별 판매 점유율도 9.8%에서 9.5%로 오히려 줄었다. 이유인즉슨 순위권에 든 소설 중 올해 출간된 소설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10위권 소설 여섯 권 중 올해 나온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문학동네)이 유일했다. 나머지 다섯 권 중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열린책들) ‘미 비포 유’(살림)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비룡소) 세 권의 공통점은 영화나 TV의 인기를 힘 입은 미디어셀러라는 것이다. 올 한해 소설의 최고 동력은 단연 미디어였다.

영화ㆍ드라마, 출판계 새 동력 될까

지난해 출간된 ‘창문 넘어..’는 올해 6월 동명의 영화가 개봉한 뒤 6주 만에 판매량이 150% 뛰었다. 지난해 나온 ‘미 비포 유’도 4월 KBS ‘TV 책을 보다’에서 소개한 후 베스트셀러에 진입했고 2009년 출간된 ‘에드워드 툴레인의...’은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등장한 뒤 한 달 만에 5만부가 팔렸다. 미디어가 책의 인지도를 좌우하는 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미디어셀러의 독보적인 질주가 두드러진 올해, 출판계에서는 영화와 소설의 다양한 만남이 성사됐다.

10월 개봉한 영화 ‘마담 뺑덕’은 비슷한 시기에 동명의 소설로도 출간됐다.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마담 뺑덕’은 ‘동시에, 다르게’ 쓰인 게 특징이다. 영화사는 ‘심청전’을 원작으로 영화와 소설을 동시 제작할 계획을 세우고 소설가 백가흠씨에게 소설 집필을 의뢰했다. 백씨와 시나리오 작가는 주요 설정 몇 개만 공유한 뒤 관점도, 결말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불멸의 이순신’을 쓴 소설가 김탁환씨와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를 기획한 PD 출신 이원태 씨는 이달 초 ‘원탁’이라는 이름으로 ‘조선 누아르, 범죄의 기원’이란 소설을 냈다. 창작집단 원탁은 영화사가 출간된 소설에 원작료를 지불하고 가져가는 기존 방식을 탈피, 먼저 이야기를 만들고 영화투자사에 제안한 뒤 후에 소설로 발간하는 식으로 움직인다. ‘조선 누아르..’는 소설로 나오기 전 시나리오로 완성돼 7월에 CJ E&M과 영화화 계약을 마쳤다.

영화와 소설의 만남이 다변화ㆍ활성화하는 배경에는 침체된 소설 시장이 있다. 영화 개봉으로 인한 수혜만 소극적으로 누리던 출판사들은 불황이 심화하자 영화사에 기출간 책의 영화화를 제안하거나 개봉 영화를 거꾸로 소설화하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을 소설로 내 4만부를 판 21세기북스는 올해 ‘변호인’ ‘명량’ ‘국제시장’ 등 흥행영화들을 잇따라 소설로 펴냈다. 윤군석 미디어사업본부장은 “소설은 작가의 인지도를 빼면 마케팅 수단이 사실상 전무하다”며 “먼저 영화나 드라마로 나오면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져 책을 홍보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고 말했다. 출판사보다 영화사나 드라마 제작사가 더 적극적인 경우도 많다. 오유미 위즈덤하우스 편집장은 “원작 유무에 따라 시청자의 관심도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책으로 내는 것에 대부분 긍정적”이라며 “영화나 드라마가 제작에 들어갈 즈음 소설화를 제안해 개봉?방영시기에 맞춰 책을 출간한다”고 말했다.

미디어와 소설의 활발한 교류에 비판적 시각도 있다. 소설이 영상의 파생상품처럼 소비돼 질이 떨어지고 장기적으로는 자생력이 저하할 수 있다는 우려다. 지금까지 영상을 소설로 옮긴 책들의 대부분은 시나리오 작가나 드라마 작가, 무명의 소설가가 썼다. 한 중견 소설가는 “시나리오와 소설은 완전히 다른 장르라 각각 습작 기간이 4, 5년씩은 필요하다”며 “같은 ‘글’이라는 이유로 시나리오 작가가 한두 달 만에 소설을 뚝딱 써내는 걸 보면 소설을 우습게 여기는 듯한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출판사들도 영상을 소설로 써낼 ‘검증된’ 소설가가 적어 애를 먹고 있다. 윤 본부장은 “이름이 알려진 소설가들은 온전한 자신의 창작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부분 이런 작업을 꺼린다”며 “영화와 소설이 분리되지 않은 미국처럼 국내에도 하나의 이야기가 영화, 드라마, 책 등 다양한 콘텐츠로 소비되는 문화가 정착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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