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성 정신장애
女 40대> 50대> 30대> 20대, 男 60대> 50대> 70대> 40대
40대女, 폐경에 정신적 위기 겹쳐 60대男, 사회 활동 크게 줄어 공허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둔 주부 김기선(46ㆍ가명)씨는 둘째를 낳은 2008년 직장을 그만둔 뒤부터 하루 소주 한두 잔을 마셔왔다. 전업 주부로 집 안에 들어앉으며 기분 전환으로 마시기 시작한 술이 최근에는 하루 한두 병까지 늘었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집안 일을 끝낸 후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술을 마셨지만 김씨의 알코올 중독을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편 이모씨는 “하교 시간에 아이를 데려가지 않는 날이 많다”는 둘째 딸 유치원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렸다. 그제서야 이씨는 아내 김씨를 알코올전문병원에 입원시켜 알코올중독 치료를 시작했다. 이씨는 “치료를 안 받으면 이혼하겠다고 으름장 놓아서 겨우 입원시켰지만, 다른 가족들에게는 도저히 말할 용기가 없어 알리지 않았다”며 “돌아오는 설날에 치료를 중단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40대 여성과 60대 남성이 술에 중독되거나 술 때문에 정신병적 증상이 나타나는 알코올성 정신장애에 가장 많이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3년 알코올성 정신장애 인구 10만명당 진료 인원은 여성의 경우 40대가 90명으로 가장 많았고, 50대가 87명으로 뒤를 이었으며 30대(77명), 20대(59명) 순으로 많았다. 남성의 경우 60대가 537명으로 가장 많았고 50대(501명), 70대(457명), 40대(331명) 순이었다.
남성들이 수십년 간 음주를 지속한 결과 60대 노년층에 알코올성 정신장애를 경험하는 비율이 높은 반면, 여성들이 40대에서 알코올성 정신장애가 많이 나타나는 것은 이 연령대가 정신적 위기에 가장 노출이 많은 탓으로 분석된다. 이선구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알코올치료센터 교수는 “여성은 40대에 폐경과 함께 급격한 호르몬 변화가 있고 중년기로 넘어가면서 나이 들어감에 대한 자각, 여자로서의 역할의 변화 등을 경험하게 된다”며 “이 과정에서 우울증과 같은 기분장애가 생기는 경우가 많으며, 이 때 일종의 ‘자가치료’로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아 알코올성 정신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60대 남성 환자가 많은 것은 이 연령대가 수십년 음주를 해온데다 사회·경제적 활동이 적어 정신적으로 위기를 맞게 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알코올성 정신장애는 알코올중독으로 불리는 ‘알코올 사용장애’와 술을 마신 후 불안ㆍ초조ㆍ환시ㆍ우울증ㆍ공황장애 등 정신병적 이상증세를 보이는 ‘알코올 유도성 정신장애’로 구분된다. 술을 마신 뒤 기억이 없는 이른바 ‘필름 끊기는 증상’이 반복되거나, 남성은 일주일에 소주 7병, 여성은 4병 이상 마시면 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알코올성 정신장애는 방치하면 알코올성 치매나 뇌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전체 알코올성 정신장애 진료 환자는 2008년 6만3,821명에서 연평균 3.5%씩 늘어 지난해 7만5,925명을 기록했다. 남성(6만1,438명)이 여성(1만4,487명)보다 4.2배 많았다. 인구 10만명당 비율로는 남성이 2008년 212명에서 2013년 244명으로, 여성은 같은 기간 52명에서 58명으로 증가했다.
이선구 교수는 “알코올성 정신장애의 치료의 가장 큰 원칙은 단주(斷酒)로 특히 알코올 의존성이 있는 경우 반드시 술을 끊어야 한다”며 “알코올 의존성이 없더라도 폭음을 피하고 마실 술의 양을 미리 정해 술자리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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