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전무퇴(臨戰無退), 전투에 임하여서는 무릇 물러나지 않는다는 말로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굳은 의지를 담고 있다. 전투를 앞둔 기상과 용기를 강조하는 숭고한 이 말이 군인정신의 핵심이 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위정자 입장에서 이 보다 더 나은 상황은 아예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조선 중기 이율곡 선생의 10만 양병설이 받아들여져 일본의 침략에 미리 대비하고 저들이 한반도를 감히 침략하지 못하였다면, 이순신 장군의 ‘명량’은 아예 없었을 지도 모른다.
‘암(癌)전무퇴’는 물론 ‘임전무퇴’에서 따온 말이다. 암 진단을 받은 이후 약해질 수 밖에 없는 몸과 마음을 다잡고 힘든 수술과 두려운 항암치료 앞에서 포기하지 말자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 단어 역시 ‘암 발병’이 없다면 아예 불필요한 말이 될 수밖에 없다. 암을 정복하기 위한 연구와 노력이 다각도에서 펼쳐지고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암 정복은 암 예방이 아닐 수 없다. 몇 년 이내로 지금보다 획기적인 암 치료법이 발명된다 하더라도 암을 아예 안 생기게 하는 방법이 개발된다면 그 치료법은 이내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궁극적인 암 정복, 그러니까 암 예방을 위해서는 ‘암이 왜 생기는가’하는 암 발생 기전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 과정이 만만치 않다. 암 발생 과정을 밝히는 연구는 상당히 복잡하고 철저한 증명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는 이러한 연구결과가 결국 인구집단 전체에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암 발생 과정을 밝히는 연구는 대략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이미 발생한 암환자의 조직과 혈액을 분석하여 특정 성분이 일반인과 다른 점을 찾아 내고 그 성분이 달라지게 한 발암물질을 찾아내는 과정이 첫 번째 단계이고, 이 과정에서 알게 된 유력한 발암물질을 실험동물에게 주입하여 실제로 예상한 암이 발생되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두 번째 단계이다. 마지막으로 이 물질이 실제로 보통의 인구집단에서도 암을 일으키는지를 증명하는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은 윤리적인 측면에서 불가능하다. 즉 치료약 대한 임상 시험은 참여자를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쪽은 위약을 먹이고 다른 한쪽은 치료약을 먹여 효과를 판정하는 것인데, 예방 연구에서는 한쪽 집단에 일부러 발암물질을 먹일 수 없기 때문에 그와 같은 임상 시험 연구는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어떤 발암 물질들은 임상 시험이 없이 그 발암 성능이 증명 되기도 한다. 관찰 연구라는 기법을 통해서인데, 관찰 연구는 참여자에게 일부러 발암 물질을 먹게 하는 것이 아니고 본인 스스로 알아서 먹는 것을 기록하고 훗날 그 사람에게 암이 생기는지를 추적하는 연구 방법이다. 일부러 담배를 피우게 하면서 암이 생기는지 관찰할 수는 없지만, 본인 판단 하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장기 추적해서 암 발생 확률이 높다는 것을 증명하는 연구는 윤리적으로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방법을 통해 잘 알려진 발암 물질들에는 흡연, 까맣게 탄 고기, 과도한 음주, 비만, 운동 부족 등이 있음을, 새해를 맞아 기억해 보자.
이대여성암병원 부인종양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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