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코커가 얼마 전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오래 전 담배를 끊었다는 글을 읽었는데 사인은 폐암이었다. 쓰디쓴 흑맥주 같은 그의 거친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다 생각하니 서글펐다.
조 코커는 한국에서 그다지 인기 있는 가수가 아니었다. ‘유 아 소 뷰티풀’이라는 명곡이 있긴 했지만 한국의 팝 애호가들에게 있어 그는 ‘남의 노래를 잘 해석해 부르고 목소리 독특한 가수’ 정도였다. 영국의 조영남이랄까(부정적 의미는 아니다).
‘유 아 소 뷰티풀’(빌리 프레스턴), ‘언체인 마이 하트’(레이 찰스), ‘위드 어 리틀 헬프 프롬 마이 프렌즈’(비틀스) 등 조 코커의 대표곡들이 대부분 리메이크였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신은 그에게 독특한 목소리를 선물했지만 작곡 능력까지 주진 않았다. 그 역시 “나는 재능 있는 작곡가가 아니어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했다.
조 코커는 창작에 있어서 재해석이 작곡 이상으로 중요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준 가수였다. 그는 비틀스의 팬들도 외면했던 ‘위드 어 리틀 헬프 프롬 마이 프렌즈’를 명곡 반열에 올려 놓았다. 수많은 비틀스 리메이크 중에서 이처럼 원곡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은 곡은 그리 많지 않다.
코커가 약물과 알코올에 빠져 재능을 낭비하고 있을 때 발표한 ‘유 아 소 뷰티풀’(1975)도 원곡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어떤 노래를 불러도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아리랑’을 불렀어도 ‘강남스타일’을 불렀어도 코커는 원곡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시켰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노력하는 건 노래에 ‘코커주의’(Cockerism)를 입히는 것, 다시 말해 내가 노래하는 방식에 맞게 곡을 맞추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50년간 영국 블루아이드솔(백인 가수가 블루스 풍으로 노래하는 솔)의 진수를 토해낸 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코커의 유일한 빌보드 1위곡 ‘업 웨어 위 빌롱’이 쓰였던 ‘사관과 신사’가 아니다. 제목만 들어도 엉큼한 죄책감에 가슴이 뛰는 영화 ‘나인 하프 위크’(1986)다.
에로티시즘의 전도사로서 복음을 전파했던 애드리언 라인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미국 개봉 당시 흥행에 실패했으나 해외와 홈비디오 시장에서 성공하며 ‘에로티시즘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섹시 스타 미키 루크와 킴 베이싱어(당시 한국식 표기는 배신저)가 일으킨 엄청난 화학작용 덕에 2차 성징으로 몸 둘 바 모르던 남자 아이들에게 ‘필독서’처럼 회자되던 영화였다. 돌이켜 보면 내용보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테이프를 빌리는 것부터 부모가 맞벌이하는 친구네 집 VCR에 테이프를 집어넣는 것까지 과정이 더 짜릿했던 것 같다.
조 코커의 노래는 순진한 청소년 관객의 심장을 터트릴 뻔했던 ‘스트립티즈’ 장면에 등장한다. ‘유 캔 리브 유어 햇 온’이란 곡인데 이것 역시 랜디 뉴먼의 노래(1972)가 원곡이다. 불 꺼진 방에서 미키 루크가 앉아 있는 동안 베이싱어가 블라인드 너머 어둠 속에서 하나씩 옷을 벗어 던질 때 코커는 거친 목소리로 “자기야, 코트를 벗어. 신발도 벗고. 드레스도 벗어. 그래, 그래. 모자는 쓰고 있어도 돼”라고 노래한다. 변태 같다고? 위트를 품은 ‘19금’ 노래는 이렇게 끝난다. “내 사랑이 잘못됐다고들 하지. 그들은 사랑이 뭔질 몰라. 난 사랑이 뭔지 알지.”
요즘 에로영화에 비하면 수위가 낮은 작품이지만 관능적인 에너지는 어느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찌릿하다. 코커가 1986년 발표한 이 노래는 에로틱한 음색 하나 없이도 지난 30년간 가장 상징적인 스트립티즈 주제가로 꼽히고 있다. 지금은 너무 변해버린 미키 루크와 퇴폐적인 백치미의 대명사였던 킴 베이싱어가 가장 반짝거렸던 그 때 그 노래, 이제 저 세상 사람이 됐지만 혈기 넘치는 조 코커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금세라도 무대 위에 올라 발작하듯 팔을 흔드는 예전의 그 모습을 다시 보여줄 것만 같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조 코커의 ‘You Can Leave Your Hat On’ 뮤직비디오
조 코커의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1969년 우드스톡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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