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비알바하다 사고사 軍후임 기려... 고용 불안한 인턴 월급 털어 전달
'감성팔이' 악성 댓글 마음 아프지만 "죽음 기억해 기부 분위기 퍼졌으면"
24일 서울 여의도의 카페에서 만난 A(26)씨는 “대단한 일 아니다. 다만, 기부 분위기 확산에 동참하기 위해 인터뷰에 응한 만큼, 익명을 보장해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A씨는 지난해에 이어 20일에도 서울 중구 사랑의 열매회관에 군 후임이었던 ‘황승원’씨 이름으로 99만원의 성금을 기탁한 익명의 기부자다. 편지에는 “올해도 큰돈이 아니라 죄송하다.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어린 친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썼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황씨와의 인연은 각별하다. 충남 전경부대에서 1년 터울 후임으로 만난 황씨는 무리한 훈련이나 일을 하면 근육이 일부 손상되는 희귀질환을 갖고 있었다. “건강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는 모습이 대견해 마음이 쓰였습니다.”
특히 황씨가 어려운 가정 형편을 돕기 위해 휴가 때에도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는가 하면, 일부러 등록금이 싼 국립대학에 재입학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둘은 더욱 각별해졌다. 먼저 전역한 뒤에도 황씨에게 면회도 갔다. “그날 면회소에서 ‘사회에서 꼭 다시 만나자’던 약속이 마지막이 되고 말았습니다.”
황씨는 2011년 7월 경기 고양시의 대형마트 기계실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복학생이었던 황씨는 등록금을 벌고자 냉동설비 수리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밤늦게까지 좁은 기계실에서 일하다 질식사한 것이다. 등록금 때문에 짧은 생을 마쳐야 했던 충격적인 사건이 세간의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도록 A씨는 ‘기부’라는 방법을 택했다. 2013년에는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올해는 인턴사원 월급을 털어 기부했다.
‘99만원’의 의미에 대해 A씨는 “물은 섭씨 100도에서 끓는다”며 “누군가가 나머지 1도를 사랑으로 채워달라는 의미를 담았다”라고 말했다. A씨가 기부한 99만원은 저소득 가정 학생 3명의 장학금으로 사용됐다.
“사실, 언제까지 계속할 지는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고향인 울산을 떠나 서울 고시원에 살면서 인턴 월급 120만원에서 99만원을 기부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턴이 끝난 후에도 지금 회사에 계속 다닐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게다가 A씨의 기부활동이 인터넷에서 알려지자 “쓸데 없는 짓” “감성팔이 행동” 등의 악성 댓글이 줄을 이었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다’며 외면했지만 순수한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하는데 대한 아쉬움은 컸다.
그럼에도 그의 선행은 조금씩 퍼져가고 있다. 23일 경기 수원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30~40대로 보이는 남성이 편지와 현금 100만원이 든 봉투를 넣고 갔다. 기부자 항목에는 ‘황승원과 그의 친구’라고 적혀 있었다. 이 남성은 “아르바이트를 하다 숨진 친구의 이름으로 2년째 기부하는 청년의 사연을 듣고 가슴이 먹먹해졌다”고 했다.
글ㆍ사진 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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