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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 마 짝사랑… 한국은 獨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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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 마 짝사랑… 한국은 獨 무대

입력
2014.12.2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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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유연화·연금개혁, 통진당 해산 결정·4대강사업…

정작 독일선 자신감 약화 추세… 근린궁핍화 정책·저임금 비판도

한국사회는 ‘메이드 인 저머니’를 지향한다. 독일제(製)는 거리의 외제차나 부엌의 주방세트만이 아니다. 관료의 정책, 정치인의 정당모델, 진보적 담론이 제시하는 대안들의 원산지가 거개는 독일이다. 멀리 갈 필요 없이 19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결정도 따지고 보면 독일제도의 수입결과였고, 그에 따른 논란 역시 독일판례의 경로를 벗어나지 않았다. 한국의 독일지향은 앞서 판을 쳤던 미제(美製), 일제(日製)보다 한 수 위인 프리미엄 급이다. 나침반인 격이어서 마치 우리를 규정하는 게 독일인 듯 착각이 들 정도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내년 목표로 밝힌 노동시장 유연성 정책은 11년 전 독일의 하르츠 개혁을 본 딴 것이다. 공무원 연금개혁의 성공모델이나, 민영화 논란을 겪은 철도산업 발전방향 역시 독일제였다. 정부의 제조업 혁신을 위한 인더스트리4.0이나 혁신센터는 물론이고 하물며 교육부와 고용노동부가 9개 시범 특성화고를 선정하며 덧붙인 설명이 독일식의 도제식 직업교육 모델이란 것이다. 독일차에 밀려 내수시장 70% 선이 무너진 현대ㆍ기아차마저 한전부지에 독일식 모델인 아우토슈타트를 지을 계획이다.

사실 독일 배우기는 정권이나 부문을 가리지 않고 등장한 단골메뉴였다. 2007년 이명박 대선후보는 독일운하에서 4대강 운하사업 정당성을 마련했고, 시민운동가로 성공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일찍이 독일 시민단체를 연구했다. 6월 지방선거에서 독일모델인 연정(聯政)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남경필 경기지사는 이후 독일 유력 정치인들을 찾아갔다. 김황식 전 총리까지 앞으로 독일 모델을 배우는 활동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독일은 세계가 벤치마킹하는 모범국가다. 성장과 복지란 두 마리 토끼를 잡았고, 국가경쟁력, 국가신뢰도는 최고 수준이다. 올해 Gfk 국가브랜드지수와, 영국 BBC방송의 국가이미지조사에서 독일은 단연 1위였다. 독일 전문가인 김택환 경기대 교수는 “한국이 꿈꾸는 세상은 독일에서 구현된 현실”이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한국인의 독일사랑은 짝사랑에 가깝다. BBC조사에서 한국인은 전통우방 미국도 아닌 독일을 가장 긍정적인 나라(84%)로 꼽은 반면, 독일인은 한국을 24%만 그리 생각했다.

한국인의 독일환상은 1960년대 시작됐다. 최근 인기리에 상영 중인 영화 ‘국제시장’의 파독 광부와 간호사에서 보듯 당시 독일은 최빈국 한국의 어깨를 두드려준 키다리 아저씨였다. 이후 일본과 대비되는 과거사 청산, 한국보다 일찍 이룬 통일, 특유의 견고한 제품 등이 긍정적 이미지를 강화시켰다. 독일제품이라면 평생 고장 나지 않고, 독일에서 성공한 정책은 한국에서도 효과를 본다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독일 환상으로 우리가 지불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무늬만 독일제인 정책으로 치러야 하는 기회비용이나, 동일 성능의 독일제품에 국산보다 수배의 값을 더 지불하는 비용이 그 대가이다. 올해 들어서만 대독 무역수지 적자는 122억달러를 기록 중이다.

더구나‘메이드 인 저머니’에도 분명 한계는 있다. 그 동안 독일의 3대 기적으로 평가되던 재정의 안정, 높은 수출 경쟁력, 실업률 축소의 3가지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 역시 높아지고 있다.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는 균형예산은 이른바 근린궁핍화 정책(Beggar-thy-neighbor model)으로 불린다. 다른 국가의 경제를 궁핍하게 만들면서 자국의 경제를 회복시키는 수탈경제모델이란 것이다. 독일제품 경쟁력 역시 임금인상 억제를 통한 가격경쟁력이며, 낮은 실업률의 기적은 저임금 시간제 일자리의 증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독일 내부에서도 세계의 모델이란 자신감이 붕괴 직전에 있다는 버블 붕괴론이 고개를 드는 실정이다. 최근 ‘독일 환상(The Germany Illusion)’을 펴낸 마르첼 프라츠셔 독일경제연구소장은 “세계의 기적이란 칭찬에 들떠 있는 독일이 변해야 할 때”라고 했다. 누구보다 독일의 당사자인 롤프 마파엘 주한 독일대사는 본보 인터뷰에서 “독일이 그리 대단한 나라인 줄 한국에 와서 알았다”며 한국인들의 독일 환상이 지나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준호기자 junho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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