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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엄지만 남은 손가락

입력
2014.12.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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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잘 하거나 마음에 드는 일을 하면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엄지손가락 그림은 ‘좋아요’라는 아이콘으로 쓰인다. 게재한 글에 동의하거나 마음에 들면 그 그림을 누른다. 최근 페이스북 등에서 왜 ‘좋아요’만 있느냐며 ‘싫어요’도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래도 자신이 올린 글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주면 기분은 좋을 것이다. 누구나 엄지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엄지 아닌 손가락들도 있다.

새끼손가락이 요구했다. “너, 이 약속 꼭 지킬 거지? 그럼 나랑 손가락 걸고 맹세해!” 그러자 조그만 게 감히 약속을 요구한다고 잘라버렸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약속을 지킬 생각도 없었거나 지킬 능력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약속을 확인하자며 내민 새끼손가락이 밉거나 가소로웠을 것이다.

넷째손가락은 새끼손가락처럼 촐싹대며 나대지 않았다. 그러나 “날 진짜 사랑한다면 내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줘!”라고 요구했다. 엄지가 보기에 넷째손가락은 별로 쓸모도 없고 솔직히 한 족보도 아니라고 여겼다. 귀를 파거나 코를 후빌 때도 쓸모가 없으니 어쩌면 새끼손가락만도 못하다 내심 여기는데 반지를 끼워달라니 콧방귀가 나올 뿐이다. 게다가 다른 네 손가락은 서로 신경조직이 맞물려서 신호를 보내면 곧바로 반응하는데 넷째손가락은 따로 논다. 오죽하면 피아노나 현악기를 연습할 때 넷째손가락만 따로 연습시키는 하농 같은 교본이 있겠는가. 그래서 잘라버렸다.

셋째손가락은 제가 제일 길다며 잘난 척하는 것도 꼴사나운데 걸핏하면 손가락 치켜들어 욕을 해대는 통에 그렇잖아도 밉살스럽던 차라 주저하지 않고 잘라버렸다. 그에 비해 둘째손가락은 입속의 혀처럼 시키는 일은 곰살맞게 잘 해서 마음에 흠뻑 들었다. 슬쩍 운만 떠도 온갖 곳 다 쑤시고 다니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시키고 누를 뿐 아니라 원하는 건 다 찾아내 주니 어디 하나 버릴 데가 없어서 예뻐했다. 그러나 가만 보니 시키지 않은 일까지 여기저기 손대며 제 잇속 차지하기도 하고 자기 빼곤 의지할 데 어디 있냐며 대들기도 해서 어느 날 홧김에 잘라벼렸다.

이제 아무도 대들거나 따질 놈 없으니 엄지손가락은 두려운 게 없었다. 그래서 모든 이에게 ‘좋아요’만 누를 엄지만 남기고 다 자르도록 했다. 늘 ‘좋아요’를 누르는 손가락만 남으니 계정에는 태평성대를 노래하고 충성심은 하늘을 찌르는 것으로 보여 흡족했다. 그렇게 그들은 모두 엄지손가락만 남게 되었다. 그렇게 엄지만 남았다.

‘I have all thumbs’라는 영어 문장이 있다. 직역하면 ‘나는 모두 엄지손가락을 갖고 있다’는 뜻인데, 그래서인지 자칫 그게 아주 좋은 문장인 줄 짐작하는 이들도 꽤 많다. 엄지손가락은 으뜸이나 매우 좋다는 의미로 쓰기 때문에 그렇게 짐작할 것이다. 그러나 그 문장의 뜻은 ‘나는 참 재주가 없다’ 혹은 ‘실수를 자주 저지르다’는 의미이다. 생각해보라. 손가락이 전부 엄지로 되어 있다면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자연은 큰 것 작은 것 고루 공존하며 서로를 배려하고 의지하며 존재한다. 자연이 아름다운 건 바로 그런 조화가 드러날 때이다. 그래서 자연이 가장 큰 스승이다. 자연을 거스르며 살면 재앙을 초래한다. 반역은 삼족을 멸하지만 우주의 질서와 자연의 가치를 말살하면 대대로 천벌 받는다. 지금 드디어 엄지만 남았다고 환호작약하는 무리들이 있다. 땅콩 때문에 회항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르고, 비록 고작해야 땅콩 크기일 뿐인데 예전 논쟁 때 곤욕 치르게 하며 오금 저리게 했다고 아예 통째로 날려버리는 저 온갖 신공들이 난무한다. 예의도 배려도 없이 제 입맛대로만 다루려 한다. 나머지 손가락들도 죄다 엄지 아바타들로 채웠다. 제 눈에 그게 흡족해 보일지 모르지만 아무 쓸모도 없는 손일 뿐이다. 엄지손가락들 지금 기세등등이지만 그래봤자 잠깐뿐이다. 모두 허당이다. 세밑이다. 잘린 손가락들부터 다시 찾아야겠다. 엄지만 남은 저 손들이 자연의 법칙마저 깨뜨리기 전에. 손바닥 손가락 활짝 펴서 거부할 수 있도록.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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