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년 전통 전 세계 125개국서
컨테이너 선박 600여척 운영
현장중심 경영 등 업무 혁신
최근 10분기 연속 수익 성장
업계 합종연횡 태풍의 눈
전 세계 해운업계가 2015년 두 거대 동맹의 출범을 앞두고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그간 6년째 이어져 온 불황의 해무는 올해도 글로벌 해운업계를 깊게 휘감으며 벼랑 끝 위기로 내몰았다. 해운업체들은 저마다 내년 거대동맹의 출범이 미칠 영향과 향후 해운시장의 판도 변화를 저울질하며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세계 1위 컨테이너 선사(船社)인 덴마크 머스크라인과 2위인 스위스 MSC가 내년 1월 각 사의 머리 글자를 딴 ‘2M’이라는 이름으로 해운동맹을 결성하고 공식 출범한다. 2M은 향후 10년간 컨테이너선 185척을 공동 운항하며 시장 재편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또한 세계 3위 프랑스 CMA-CGM은 중국 CSCL, 두바이 UASC와 함께 또 다른 동맹체 ‘오션3’를 결성해 내년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간다. 이 같은 글로벌 선사들의 합종연횡은 한마디로 규모의 경제를 통한 시장 지배력 확대가 목표이다. 이들 두 해운동맹의 시장 점유율은 전체의 60%. 이들이 규모화를 통한 비용 절감으로 운임 경쟁에 나설 경우 하위 선사들의 입지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바야흐로 바다를 향한 글로벌 선사들의 무한경쟁 시대가 본격화하는 셈이다.
2015년 출범 거대 동맹의 야심
거대 동맹 2M의 주축인 세계 1위 선사 머스크라인은 덴마크의 국가대표급 컨테이너 운송업체. 110년 전통의 A.P. 몰러 머스크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전 세계 125개국에 2만5,000명의 직원을 두고 330개의 터미널을 운영한다. 또한 600여척의 컨테이너 선박과 190만개의 컨테이너 및 전용부두 등을 보유한 말 그대로 글로벌 리딩 해상운송서비스업체다.
1999년부터 4년간 머스크라인 극동아시아지역운항본부 사장을 역임한 브라이언 노 크리스텐슨 한국머스크㈜ 사장은 2M의 출범 배경에 대해 “2008년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 경제 침체로 컨테이너 시장의 성장은 멈춰 버렸다”며 “2000년대 초반 매년 10% 늘어나던 폭발적인 성장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들이 살아남기 위한 최우선의 자구책은 불필요한 비용 절감이며, 이것이 해운동맹 결성의 단초가 됐다는 설명이다.
각 선사는 그동안 비용 절감 차원에서 벙커C유 소비를 줄이려고 감속 운항을 통한 연료 효율성 제고에 주력해 왔다. 그러다 보니 더 많은 선박이 동일한 화물 선적량을 필요하게 됐고 이를 맞추기 위해 정박하고 있던 대형 선박을 재운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결국 선사들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연료 효율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앞다퉈 대형 선박 발주에 나섰다. 크리스텐슨 사장은 “대형선박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선사들의 어려움이 가중됐다”며 “선복량(선박에 실을 수 있는 적재 용량)을 채우고 선박 운영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서로의 선박을 공유하는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결국 규모의 경제를 통한 비용 절감이 해운동맹의 직접적인 동인이 됐다는 얘기다.
그러나 2M의 출범을 단순히 비용 절감이라는 경제적 측면에서만 설명하는 것은 단견이다. 전 세계 해운시장의 영향력 제고를 위한 주도권 장악과 다양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정치적 결집의 성격이 큰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당초 머스크라인은 세계 2위인 스위스 MSC, 3위 프랑스CMA-CGM과 ‘P3’라는 3각 동맹을 추진했다. 한마디로 세계 1ㆍ2ㆍ3위가 합작법인을 세워 세계 해운시장을 싹쓸이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에서 출발한 셈이다.
P3 동맹의 출범을 위해서는 항로 경유지가 될 각국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이에 따라 거대 해운 3사는 지난 3월 미국, 6월 유럽연합(EU)의 승인을 받은 후 7월 중국의 승인을 거쳐 올해 중반부터 가동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중국정부가 P3 불허 결정을 내렸다. 중국 상무부는 “P3가 아시아와 유럽 간 컨테이너 정기선 시장에서 집중도가 지나치게 높아 경쟁을 제한할 수 있다”며 불허 근거를 댔다. 중국이 국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해 온 국적선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P3를 좌초시켰던 것이다. P3 동맹의 출범이 현실적으로 어렵게 되자 머스크와 MSC는 CMA-CGM을 빼고 둘만 손을 잡았다. P3보다는 그 파괴력이 약해졌지만 두 회사의 시장점유율은 아시아~유럽 항로 35%, 태평양 15%, 대서양 노선 37%에 이를 만큼 위협적이다.
크리스텐슨 사장은 거대 동맹이 미칠 향후 시장구도에 대해 “2015년 세계 해운업계는 4개 거대 동맹(2M과 오션3, 한진해운이 속한 기존의 CKYHE, 현대상선이 속한 G6)에 의해 좌지우지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특히 “동맹들은 컨테이너 서비스 협력체제를 강화할 것이고, 글로벌 해운시장을 선도하고자 하는 선사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져 또 다른 형태의 대형 동맹이 출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거대 동맹이 미칠 시장의 영향에 대해 “각 사의 장점을 모아 보유 자원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한편, 고객에겐 더욱 광범위하고 유연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며 “협력선사들로서는 고효율 저비용의 초대형 선단 구성이 용이해져 원가 경쟁력 확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4대 동맹 간 원가 싸움과 서비스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임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이는 4대 동맹에서 소외된 중소 선사들의 어려움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선제적 구조조정과 혁신이 열쇠
컨테이너 해운은 전 세계 수출입 물품의 95%를 수송하지만, 지난 7년간 극심한 경기 불황 속에서 공급 초과와 운임 하락으로 제 살 깎아 먹기 식 생존경쟁을 벌여 왔다. 그러나 머스크라인은 최근 10분기 내내 전년 동기대비 높은 수익을 내며 독주해 왔다.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40% 늘어난 데 이어 지난 3분기에도 6억8,500만 달러의 수익(전년 대비 23.5% 증가)을 달성했다. 머스크라인의 독주 비결은 과연 뭘까.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해운업은 1990년대 접어들면서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저부가가치 산업으로 범용화했고, 업계에는 가격 경쟁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00년대 초ㆍ중반 호황기가 찾아왔다. 전 세계 해운사들은 앞다퉈 대형 컨테이너선을 주문하고 선원들도 증원했다. 당시 해운업계는 빠른 성장과 글로벌라이제이션이 화두였고, 머스크라인 역시 해외지사의 자율성과 빠른 의사결정을 무기로 글로벌 사업 확장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머스크는 2006년 세계 2위 선사인 P&O 네들로이드를 인수합병하기 직전부터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컨테이너 운송산업이 공급과잉의 덫에 빠지면서 성장엔진 차제가 점점 멈춰가는 위기감에 직면한 것이다. 일례로 벙커C유를 비롯한 운송 비용은 늘어나는 반면, 컨테이너선 운임은 지난 10년간 거의 고정되면서 한계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이때부터 머스크라인은 비용 절감을 위해 유휴자산 매각 등 다각적인 자구책을 찾기 시작했다. 머스크라인은 2008년 경영컨설팅업체 맥킨지의 도움을 받아 ‘스트림라인’이라는 이름의 구조조정 및 혁신 프로그램 도입에 나섰다. 한마디로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대대적인 인력 감축과 해외지사 축소는 물론 사업 목표를 매출 증대 등 빠른 성장 중심에서 비용 절감과 수익 중심으로 전환했다. 조직과 사업운영 방식 등 체질을 완전히 뜯어고친 것이다. 공교롭게도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해운업계에 불황이 엄습했고, 머스크라인은 창사 후 처음 적자 경영이라는 시련을 겪었다.
크리스텐슨 사장은 “당시 싱가포르 지사장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지사를 폐쇄한다는 본사 연락을 받고 큰 충격에 빠졌다”며 “직접 직원들의 사직서를 받고 지사 폐쇄 작업을 하며 겪었던 괴로움과 번뇌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 함께 일했던 절반에 가까운 임직원들이 회사를 떠나야 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 그 같은 결단이 있었기에 머스크라인이 환골탈태해 오늘날 세계 1위의 선사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진단했다. 실제 머스크라인이 저성장 시대의 도래를 미리 직감하고 과감한 구조조정 및 체질 개선에 나선 데 대해 해운 전문가들은 물론 회사를 떠난 임직원조차 올바른 방향이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사람과 조직, 업무형태 모두 혁신해야
머스크라인의 혁신 프로그램은 조직과 인력뿐 아니라 현장 업무시스템 하나하나까지 바꿔갔다. 현장 중심의 경영방식을 최고의 미덕으로 꼽는 크리스텐슨 사장은 머스크라인의 비용 절감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운용 비용 중 가장 큰 부분인 벙커C유를 절감하려면 감속 운항과 함께 연료 효율이 높은 선박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머스크라인은 컨테이너선의 크기와 관계없이 ETA(도착예정시간) 관리시스템을 도입해 선박 입출항 때 동일한 속도와 패턴으로 엔진을 가동하고 운항 때는 일정 속도를 유지하게 하는 운항 매뉴얼을 표준화해 연료 효율성을 높였다.
그는 “예측하기 어려운 해상 환경에서 항상 일정속도를 맞춰 운항하기란 어렵지만 정박 항구, 출발지, 도착지마다 긴밀하고 빠른 소통 채널을 활용해 운항상태를 모니터링하면서 변화를 최소화했고, 이런 과정을 통해 조직원들의 팀워크를 다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처럼 다각적이고 효율적인 네트워크 운영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모든 임직원이 비용의 중요성을 깊이 자각하기 시작했다”며 “이를 통해 전 직원이 수익 창출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함께 바라보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머스크라인의 혁신 사례는 어느 날 갑자기 맥킨지의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라 110년 역사와 전통의 기업 핵심가치에 근거를 두고 있다. 크리스텐슨 사장은 “머스크라인의 핵심가치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지속적인 자기 관리(Constant Care)”라며 “이는 바다에서 근무하는 선원처럼 어떤 위기가 닥칠지 모르는 미래를 대비해 끊임없이 준비하고 당면한 문제를 직접 부딪쳐 이겨내는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바로 이 같은 지속적인 자기 관리를 통해 조직 스스로 비용 절감 노하우를 익히고 급변하는 산업구조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수익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조직문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크리스텐슨 사장은 머스크라인이 추구할 미래전략의 열쇠를 친환경 ‘에코(Eco) 쉽’인 트리플 E에서 찾았다. 그는 “해운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배의 크기와 연료 효율화 기술, 감속 운항, 물량 확보 등 네 가지”라며 “규모가 큰 선박일수록 경제적이고, 새로운 기술과 감속 운항은 연료의 효율성을 높이며, 물량 확보는 컨테이너 대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인다”고 설명했다. 이를 근거로 머스크라인이 개발한 혁신적인 선형(船形)이 바로 에코 쉽인 트리플 E이다.
머스크라인은 2010년 세계 최대 규모인 1만8,000TEU급 컨테이너선인 트리플 E급 20척을 발주해 이미 13대를 보유하고 있다. 실제 트리플E가 취항하면서 규모의 경제 효과로 적재량이 늘고, 선박운용에 투입되는 비용이 줄면서 지난 3분기 실적 상승의 효자 노릇을 했다. 크리스텐슨 사장은 “머스크라인 미래전략의 핵심은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수익성 개선”이라며 “내년에 출범할 2M은 이런 미래전략을 보다 구체적으로 실현하게 할 강력한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학만 선임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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