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 러시아가 1867년 알래스카를 단돈 720만 달러에 미국에 팔아 치운 일은 지금까지도 가장 바보같은 정책의 기념비처럼 회자된다. 하지만 당시엔 누구도 그 결정의 잘잘못을 가리기 어려웠다. 러시아에선 공연히 성가시기만 한 황무지를 잘 팔았다는 분위기였고, 미국에선 ‘거대한 냉장고’에 불과한 땅을 왜 샀느냐는 비판이 거셌다. 정책의 옳고 그름을 당대에 판단하기란 그만큼 어렵다.
민주화 이후 우리 경제에 최악의 부작용을 일으킨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정책’도 당시엔 올바른 방향이라는 공감이 우세했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에 맞춰 신흥국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자유무역주의 공세가 강력했다. 문민정부가 선진국 도약의 상징적 공약으로 내세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려면 어차피 추가 금융시장 개방을 포함한 경제자유화 조치가 불가피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이 세계화정책 추진의 논리가 됐다.
세계화정책이 일단 새 국정과제로 자리잡자 민감한 조치들이 신속하게 밀어붙여졌다. 금융개방 속도가 너무 빨라 위험하다는 재무관료들과 학계의 우려는 무시됐다. 1995년부터 대대적 외환자유화 조치와 기업의 해외 자금조달 규제완화가 단행됐고, 종합금융사가 허가됐다. 국내 제조업의 글로벌경쟁력 제고를 명분으로 삼성 자동차가 허용됐으며, 한보철강의 무리한 확장이 진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적절해 보였던 세계화정책은 신흥국 경제거품이 일시에 꺼지면서 재앙으로 돌변했다. 풍부해진 국내외 자금을 끌어다 대규모 투자에 나선 기아와 한보가 휘청거렸고, 거기에 돈을 빌려 준 은행들이 순식간에 크게 흔들렸다. 골드만삭스라도 된 듯 겁 없이 국제 파생금융상품시장에서 투기판을 벌였던 종금사들이 갑자기 채무불이행 상황에 빠지면서 국가경제가 단숨에 위기의 회오리에 휘말렸다. 그리고 마침내 1997년 외환위기가 촉발됐다. 그제야 애초의 경고와 우려대로, 세계화라는 깃발 아래 추진됐던 금융자유화와 경쟁촉진, 투자정책에 수많은 잘못이 있었음이 확인됐다.
당장 잘잘못을 따질 수 없기는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정책도 마찬가지다. 불황 속에서 가계자산의 70%를 차지하는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 거시경제에 치명적 장애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정부는 그 동안 규제완화와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통해 집값을 올리거나 유지하는데 주력해왔다. 전체의 30%에 이르는 전세가구를 주택매매 수요로 돌리기 위해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늘려주고, 금리를 낮췄다. 아울러 ‘주택임대차 선진화 방안’ 등을 통해 전세의 월세 전환을 적극 유도함으로써 ‘비싼 월세 사느니 전세금에 빚 보태 집을 사자’는 심리도 자극했다. 그걸 섣불리 잘못이라고 매도할 순 없다.
하지만 가볍지 않은 실패의 징후가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2년째 이어지는 부동산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시장활성화 효과는 미미하다.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가 없으니, 새로운 매매수요가 창출되지 못한 것이다. 대신 전셋값이 치솟고, 월세가 확산되면서 서민가계의 주거 부담이 높아지고 소비를 위축시키는 부작용만 증폭됐다. 그나마 집값이 가까스로 유지되니 망정이지, 사정이 악화해 거품이 꺼지면 부작용은 더욱 괴멸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정부는 최근 여야 간의 ‘부동산 3법’ 처리 합의가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부동산정책을 주거안정이라는 고유의 목표 대신 거시경제 활성화의 수단쯤으로 여기는 듯한 지금의 부동산정책에선 왠지 재앙의 예감을 떨칠 수 없다. 여당 내 정책통인 이한구 의원조차 얼마 전 “자꾸 빚 내서 집 사라는 정책은 잘못”이라며 정책 목표를 “서민의 주거환경 개선으로 확실히 잡아야 한다”고 거듭 주문했다.
정책의 옳고 그름을 당장 따질 수 없다는 게 무리한 정책을 고집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이미 예사롭지 않은 경고와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정부는 이제라도 부동산정책 방향을 재정립할 필요가 크다. 집값 띄우기에 대한 위험한 집착에서 벗어나, 서민을 위한 전월세 안정 대책부터 마련하는 게 우선임은 물론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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