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다룬 드라마 '펀치'ㆍ영화 '님아...'
욕망 떼어 낸 진정한 인간 관계 보여줘
삶의 본질 확인할 기회로 삼아야
권력게임을 다루는 드라마는 대개 등장인물의 욕망에 천착한다. MBC ‘하얀거탑’에서 장준혁(김명민)이라는 천재 외과의가 보여준 것은 병원 안 권력을 얻기 위한 끝없는 욕망이었다. 환자의 생명마저 권력 쟁취의 도구로 활용하던 장준혁은 그 끝에서 자신 역시 허망하게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는 미력한 존재라는 걸 깨닫는다. 욕망의 끝이 죽음으로 마무리 되는 것이다.
박경수 작가가 들고 온 SBS의 ‘펀치’는 설정이 이와 다르다. 어렵게 검사 시절을 보낸 박정환(김래원)은 성공의 욕망이 누구보다 강하다. 그는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뭐든 하는 이태준(조재현) 같은 인물을 검찰총장으로 만들기 위해 검사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서슴없이 한다. 가난하게 고생하는 가족에 대한 마음이 그 이면에 있지만 때로는 욕망이 괴물처럼 자신을 삼키는 순간을 맞는다. 그런데 이태준이 검찰총장이 되고 자신의 출세길도 열리려는 그 순간에 박정환은 뇌종양 판정을 받는다. 장준혁이 욕망의 끝에 사망 선고를 받는다면, 박정환은 욕망이 실현되려는 그 순간 사망 선고를 받는 셈이다.
흥미로운 건 이 죽음의 판정을 헤치고 박정환이 살아난다는 점이다. 물론 이건 드라마틱한 구성일 수밖에 없겠지만 ‘죽음’이라는 설정이 주는 울림은 의외로 크다. 그가 죽는다는 사실은 그 주변에 놓인 애매한 관계들의 진짜 얼굴을 끄집어낸다. 이태준은 심복이었던 박정환의 전처 신하경(김아중) 검사에게 살인자 누명을 씌워 위기를 넘기려 하고 그와 대결 양상을 보이던 신하경은 거꾸로 박정환을 보호하려 한다. 결국 죽음이라는 판정은 박정환에게서 욕망의 껍데기를 떼어놓고 사태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죽음 앞에서 명백해지는 삶의 본질. ‘펀치’가 권력의 욕망 앞에 선 인간들을 통해 보여주려는 것이 아마 이것일 게다. 현대인의 삶이 복잡해지고 그 삶의 욕망 또한 다양해지면서 우리의 삶은 본질에서부터 점점 멀어져 간다. 진정한 관계는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고 활용하는 비인간화가 진행된다. 무엇보다 이 모두가 추구하는 욕망들 속에서 누군가는 떵떵거리며 잘 살고 누군가는 주린 배를 틀어쥐는 양극화의 현실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결국은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뭐 그리 안간힘을 쓰고 있는가. 다 똑같은 운명인걸.
연말에 갑자기 나타나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독립 다큐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보여주는 것도 죽음 앞에 선 삶의 본질이다. 89세 강계열 할머니와 98세 조병만 할아버지의 마지막 로맨스는 욕망과 거리가 먼 삶의 본질을 보여주었다. 소박하게 살아가는 그 어르신들에게서 느껴지는 건 진정한 사랑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가능한 건 ‘죽음’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자신이 언젠가 죽는 존재임을 잊지 말라는 뜻이다. 물론 죽음을 예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삶을 찬미하는 말이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찬란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올해만큼 사건 사고 속에서 죽음을 많이 경험한 해도 드물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꼈는가. 죽음을 야기한 사회 부조리들이 반드시 밝혀져야 하겠지만 그와 별개로 죽음 앞에서 다시 삶의 본질을 확인하는 기회가 됐어야 하지 않을까. 욕망의 끝이 허망하게도 죽음으로 귀결된다는 그 사실을 인식할 때 삶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다가올 2015년은 모두가 삶의 진짜 얼굴을 마주할 수 있기를.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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