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라크 북서부 신자르산 일대에 몰려 사는 쿠르드 계열 소수민족인 야지디족은 8월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신자르산 일대를 공격하며 ‘이슬람교로 개종하지 않으면 살해하겠다’고 위협, 이들을 사지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이름도 생소한 이 소수 민족에게 손을 내민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IS공습 승인을 발표하는 연설에서 “‘조그만 고대 종교의 종파’인 야지디족이 먹을 음식과 물이 없이 굶주려 어린이들은 거의 죽어간다”며 이들을 구조할 것을 천명했다. 수주 후 IS의 신자르산 지역 공격을 물리쳤고, 세계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쏠렸다.
영국 외교관 출신인 제라드 러셀이 최근 펴낸 잊혀진 왕국의 후예(Heirs to Forgotten Kingdoms)는 뿌리가 같은 기독교ㆍ유대교ㆍ이슬람교가 태동한 중동에서 야지디족처럼 종교적으로 소외됐던 소수 민족들의 출현과 이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다룬 책이다. 러셀은 이집트 이스라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중동에 거주하며 현지 문화를 탐구했던 경험과 문헌 조사를 통해 이라크의 야지디족, 이란의 조로아스터인, 이슬람교 시아파의 한 분파인 드루즈족, 이집트 원주민 콥트족 등 7개 소수 부족을 소개한다.
러셀이 초점을 맞춘 이 소수민족들은 비밀스럽다. 야지디족과 드루즈족의 경우 일종의 ‘성직자 계급(차별)’로 인해 신자들조차 종교의식과 성서를 공유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신비주의는 두려움과 오해, 그리고 이방인들에 대한 박해를 초래했다. 예를 들어, 공작의 형상을 띤 ‘멜렉 타우스’라고 알려진 천사를 유일신으로 믿으면서도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선지자도 숭배하는 야지디족은 이 천사가 때때로 사탄과 융합한다고 알려져, 이슬람교인들이 ‘악마를 숭배한다’고 비난하며 탄압의 한 명분으로 삶는다.
이민족에 대한 탄압 속에서 야지디족 등 소수민족이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온 건 자신들의 몸을 낮췄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먼저 이 부족들은 동떨어진 곳에서 살며 가능한 타인의 눈을 피했다.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하거나 비효율적이고, 소수민족들이 이슬람교 통치자나 사담 후세인 같은 현 세속주의 정권을 자극하지 않은 점도 이롭게 작용했다. 저자는 “오늘날은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부의 관료제와 첨단 기술이 부상하면서 조용히 살 공간이 적어졌기 때문에 남의 눈을 피해 살아가는 게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들이 수 세기에 걸쳐 ‘신의 계시를 담은 경전을 읽은 비이슬람교도’라는 관념을 키워옴으로써 이슬람 통치자와 합의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슬람교는 예언자 무하마드 이전의 예언자(이브라함 등)를 통해 신의 말씀을 접한 유대인이나 기독교인도 결국 이슬람교도와 같이 신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로 보고 특별 세금을 내는 대신 이들에게 자신의 종교 행사를 가질 수 있도록 관용을 베풀었다. 저자는 “다른 소수 민족들도 이런 방법으로 비슷한 지위를 확보해 지배적인 종교와 공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1998년 불어로 펴낸 책 정체성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Identity)에서 레바논 소설가인 아민 말로프를 인용, “19세기 말 당시 오스만제국 수도 이스탄불이 이슬람 신자가 아니었던 아르메니아 그리스 유대인이 대다수였다”며 “이슬람이 다른 이들과 공존할 수 있는 상당한 능력을 보여줬다”고 쓴 바 있다.
그렇다면 이런 관용의 법칙이 어떻게 무너졌을까. 러셀은 IS처럼 비이슬람교인을 강제적으로 개종시키거나 추방해야 할 사람들로 바라보는 이슬람 무장세력이나 권위적인 이슬람 정부의 발호에서 실마리를 풀어 설명한다. 저자는 “이슬람 교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이슬람 정권과 군사집단이 포용적으로 교리를 해석하는 온건주의와 달리 이슬람법을 엄격히 해석하면서 최근 50년 사이 관용의 정신이 깨졌다”고 지적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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