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문화에서 더 익숙한 동물, 한반도선 20세기 전 거의 못 봐
의롭고 아름다운 동물로 인식... 이성계 조선 건국 전 양꿈 설화

2015년은 을미년(乙未年) 양띠 해다. 양(羊)은 성질이 온순하고 무리를 지어 사는 순한 동물로 양의 해에 태어나는 사람 역시 성격이 부드럽고 감성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특히 올해는 청(靑)의 기운이 듬뿍 담긴 ‘청양(靑羊)’의 해로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푸른색의 의미가 더해져 개인과 가정에 큰 행운을 불러온다고 전해진다. 푸른색은 예부터 지혜와 넓은 하늘, 평화 등의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다른 띠동물에 비해 양과 관련한 민속 자료는 적은 편이다. 양은 유목문화에서 더 익숙한 동물로 농경문화였던 한반도에서는 20세기 이전에 거의 볼 수 없었던 동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문화에서 말하는 양은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면양(綿羊)의 모습이 아니라 산양(山羊)이나 염소의 형태로 간간히 등장한다.

양은 예부터 착하고 의롭고 아름다운 동물로 인식돼왔다. 맛있음(味), 아름다움(美), 상서로움(祥), 착함(善) 등의 한자도 모두 양(羊)의 파자다. ‘대(大)’와 ‘양(羊)’ 두 글자가 합쳐져 아름답다는 뜻의 미(美)가 되고 나(我)의 좋은 점(羊)이 옳을 의(義) 자가 되는 식이다. 이처럼 양의 온순하고 긍정적인 이미지가 일상 속에 들어와 우리문화 속 양은 길상(吉祥)의 소재로 등장했다.
다만 새해 들어 첫 양날(염소날)인 상미일은 경거망동을 삼가라는 전통이 있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은 “전남 해안 지역에서는 상미일에 출항을 삼가는 곳이 있고 제주도에서도 이 날은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다고 해 약을 먹지 말라고 한다”며 “염소가 경거망동하고 경솔하다는 인식이 영향을 끼친 결과”라고 말했다. 상미일의 풍습을 제외하고는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 민담은 전해지지 않는다.
역사 속에서 양 꿈은 길몽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성계의 꿈 설화가 대표적이다. 초야에 묻혀 지내던 이성계가 양을 잡으려는데 양의 뿔과 꼬리가 몽땅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꿈 이야기를 들은 무학대사는 양이라는 한자에서 양의 뿔과 꼬리가 떨어지면 ‘왕’자만 남게 되니 임금이 되리라 해몽했다.
양의 형상이 나타난 유물로는 조선 후기 동자가 흰 양을 타고 이동하는 모습을 그린 ‘기양동자도’, 중국 한(漢)나라 시대의 양 장식물 등이 전해진다. 또 대구시 달성군에 있는 능묘의 석양(石羊)은 상서로운 이미지가 잘 드러나는데 사악함을 물리치고 명복을 빈다는 뜻에서 봉분을 호위하는 형세로 밖을 향해 배치돼 있다. 양에 관한 그림 중에 김홍도의 ‘금화편양도’가 유명하고 문학작품으로는 피천득의 시 ‘양’이 알려져 있다.

긍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양의 해이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꼭 밝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895년 을미년이 대표적이다. 을미사변의 여파는 김홍집 내각이 실시한 을미개혁으로 이어졌고 단발령 등 각종 개혁정책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1955년에는 봄비가 그칠 날이 없어 보리농사가 망했다는 기록이 전해지는데, 이 때의 흉년이 워낙 심해 약간의 먹을 것만 생기면 “을미년 보리흉년에 이것이 약간인가”라는 유행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역사를 더 거슬러 오라가면 1415년에는 왜구가, 1235년에는 몽골이 한반도를 침입했다. 1115년에는 요의 사신이 금나라에 출병을 독촉했고 995년에는 서희가 여진을 축출했디. 935년 을미년에는 후백제 견훤이 고려에 투항했고 신라 경순왕마저 고려에 항복해 신라가 멸망했다.
양은 희생의 상징으로도 전해진다. 서양에서는 사람을 징벌하는 신에 대한 희생물로 양을 바쳤으며 우리 조상도 제사에 양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때문에 양은 재물, 종교인, 선량한 사람 등을 의미할 때도 쓰인다. 양이 가진 희생의 이미지는 그 다양한 쓰임새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흔히 양을 가리켜 가죽, 털, 고기, 뼈까지 버릴 것이 없는 동물이라 하는데 양 기름은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해 허약체질인 사람에게 좋고 양고기는 양이 적고 흔하지 않아 예로부터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음식으로 사랑 받았다. 가볍고 보온성이 높은 양모는 옷감 중에서도 최고급으로 각광받는다.
양은 정직과 정의를 나타내기도 하는데 이는 반드시 갔던 길로 되돌아오는 양의 고지식한 습성 때문이다. 이 같은 양의 이미지 때문에 한국 속담에는 “양띠는 부자가 못 된다”라는 말이 전해져 내려온다. 양처럼 정직하고 맑으면 부정을 저지르지 못해 돈을 벌기 어렵다는 의미다.
대신 양의 해는 학자의 출생빈도가 가장 높은 해로 알려져 있다. 천진기 관장은 “사주에서 양띠는 집안이 가난해도 개의치 않고 학문에 전념한다고 알려져 있다”며 “학구적인 사색을 즐기며 몰두하는 성격이 반영되기 때문인데 교수, 교사, 언론인, 문예계 등에 잘 맞는 띠로 동서양을 통틀어 학자는 양띠가 제일 많다” 고 말했다. 그는 다만 “가파른 산악지대에 사는 양은 산악의 환경에 적응하는 삶을 사는데 이것이 사주풀이에도 전해져 양띠 태생은 자존심과 자만심을 내세우며 대인관계를 피하는 일면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양은 대부분 좋은 의미를 지니지만 최근 중국에서는 양띠 출생을 꺼리는 풍토가 생기고 있다. 노인들이 겨울과 봄에 태어나는 양띠는 “풀이 부족해 배고픈 양이 될 것”이라며 만삭의 며느리를 병원으로 내몰고 있다고 한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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