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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반대 외침 생생히..."주민들 우리 이웃임을 알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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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반대 외침 생생히..."주민들 우리 이웃임을 알리려"

입력
2014.12.26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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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을 살다' 밀양구술프로젝트팀

'밀양을 살다'의 편집을 맡은 강곤(왼쪽) 오월의봄 기획위원과 밀양구술프로젝트를 기획한 인권운동가 미류씨. 밀양송전탑을 막기 위해 결성된 밀양구술프로젝트는 주민 17명의 육성을 그대로 책에 옮겼다. 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밀양을 살다'의 편집을 맡은 강곤(왼쪽) 오월의봄 기획위원과 밀양구술프로젝트를 기획한 인권운동가 미류씨. 밀양송전탑을 막기 위해 결성된 밀양구술프로젝트는 주민 17명의 육성을 그대로 책에 옮겼다. 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편집 부문 본심작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10년 간의 대장정을 거쳐 완성된 그림책 시리즈와 1,000쪽에 육박하는 묵직한 평전, 빠르게 움직이는 민물고기를 포착해 세밀화로 표현한 동물도감 등. 그 가운데서 ‘밀양을 살다’는 평범해 보였다. 대표를 포함해 두 명이 근무하는 사실상 1인출판사에서 5개월 만에 만든 책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5개월’이란 숫자의 실상은 초라함이 아닌 긴박함이었다. 2013년 12월 조직된 밀양구술프로젝트 팀과 출판사 오월의봄은 경남 밀양시에 들어설 세계 최대 규모의 765㎸ 초고압 송전탑을 막기 위해 2014년 4월까지 숨가쁘게 내달렸다.

“(책을 만들 당시) 5, 6월경에 농성장을 강제 철거할 것이란 소문이 있어서 그 전에 책이 나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책의 편집을 맡은 오월의봄 강곤 기획위원이 말했다. 23일 한국일보 편집국에서 진행된 인터뷰에는 17명의 필자로 구성된 밀양구술프로젝트를 대표해 인권운동가 미류씨가 동석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밀양 주민들의 구술로 채워진 책에 대해 미류씨는 “송전탑이 아닌 주민의 삶을 중심에 놓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인터뷰를 통해 간간히 드러나는 밀양 주민들의 모습은 투사 아니면 피해자죠. 인터뷰라는 형식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어요. 왜 송전탑에 반대하느냐고 물으니 이런저런 이유로 반대한다는 답이 나오는 거죠. 외부 사람들의 눈에는 마치 송전탑을 반대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의 중심은 송전탑이 아니에요. 송전탑 전에도 이들의 삶은 존재했습니다. 그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요.”

인권운동가, 시인, 학생, 만화가 등으로 구성된 밀양구술프로젝트 팀은 올해 1월 밀양으로 내려가 주민들을 만났다. 물리적으로 부담스런 거리와 부족한 재정, 귀를 바짝 대도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마음이 위축될 때가 많았지만 어물댈 시간이 없었다. 수집한 목소리들을 가지고 팀원들과 출판사는 2월에 다시 머리를 맞댔다.

“사투리와 비문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렇다카믄과 이렇다카망을 통일시키느냐 마느냐 하는 사소한 것까지 논의대상이 됐어요. 주민들이 선택한 말을 가능한 한 살리면서 독자들이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게 하기 위해 편집자와 팀원들이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제작 중반쯤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주민들의 육성이 들리는 듯한 생생한 글에 얼굴 사진이 빠지면 안 되겠다고 판단해 노동현장 사진을 주로 찍는 정택용 사진가를 섭외했다. 삶의 터전에 박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진 속 주민들은, 피해자도 투사도 아닌 영락 없는 우리 이웃의 얼굴이다.

수상에도 불구하고 강 위원과 미류씨는 마음껏 기뻐하지 못했다. 서둘러 책을 낸 수고가 무색하게 송전탑 공사는 12월 말 완료됐다. 미류씨는 시간을 내준 주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책이 송전탑을 막지는 못했지만 주민들이 후속 투쟁을 선언하는 걸 보면서 다시 힘을 얻었어요. 진짜 싸움은 사실 지금부터니까요. 이 책이 밀양이란 지역에 묶이지 않고 우리 사회에 계속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했으면 해요. 인간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요.”

황수현기자 sooh@hk.co.kr

▶ 심사평 - 성찰과 연대의 결과물 특별해

한국출판인회의가 주관한 우수도서편집상을 수상한 ‘조선 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교양 부문 저술상을 받아도 손색이 없을 ‘이중섭 평전’, 시와 그림의 독특한 결합으로 그림책의 새 가능성을 보여준 ‘우리시 그림책 시리즈’ 등 본심에 오른 책은 모두 완성도가 높았다. 예년 같았으면 적어도 5, 6종을 놓고 격론을 벌였겠지만 올해는 쉽게 ‘밀양을 살다’로 모아졌다.

이 책은 “지구의 온 생명들을 위험에 몰아넣는 핵 발전의 검은 몸체와 그 손발이 된 국가폭력”에 저항한 17명 주민의 일대기를 구술한 책이다. 힘없고 약한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왜 험한 투쟁에 나섰을까. 보상금 더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땅과 고향을 지키면서 지금처럼 잘 살기를 원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들은 패배한 게 아니라 승리했음을 이 책은 일깨워준다.

책의 위상이 흔들리는 지금 ‘한 권의 책’은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학습, 스펙, 지식의 새로움도 좋지만 무엇보다 인간이 상처받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진실을 담아야 하지 않을까. ‘밀양을 살다’는 우리시대 사안에 대한 관심과 지지에 그치지 않고 성찰과 연대로 뭉친 이들이 참여해 완성한 프로젝트다. 또 다른 ‘밀양’을 만들기 않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특별하게 기억할 필요가 있었다.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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