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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한국 자본주의, 새로운 논쟁의 불씨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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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한국 자본주의, 새로운 논쟁의 불씨 됐으면"

입력
2014.12.26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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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주의’ 저자 장하성 교수

경제 얘기를 하면서 그래프나 수식을 동원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추세를 설명하기 위해 그렇고 자신의 생각이 맞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렇다. 그런데 이 책에는 그 흔한 그래프나 수식이 없다. 장하성(61) 고려대 교수의 ‘한국 자본주의’다.

자본주의, 그것도 한국자본주의를 논하는데 읽다 보면 이야기책 같다.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 책인데도 술술 읽히는 것이 한국출판문화상 심사위원들이 크게 감탄한 대목이다. 스토리텔링의 절정은 한국이 정의롭지 못한 자본주의의 꼴을 갖게 된 뿌리와 현실을 마을에 빗대 표현한 ‘한마을 이야기’다. 장 교수는 “논문이 아니라 대중을 상대로 한 출판물이기 때문에 학문적 완결성을 가지면서도 잘 읽히고 읽으면 설득되도록 해야 했다”며 “고민 끝에 스토리텔링 하듯 쓰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불안과 양극화가 날로 심해지는 이 때 누구나 의문을 품어봤을 법한 자본주의의 실체를 기초부터 훑어 나간다. 고용, 임금, 분배, 성장 등부터 한국은 왜 ‘고용ㆍ분배ㆍ임금 없는 성장’을 하게 됐는지, 그래서 노동시장이, 시장경제가, 한국경제가, 이 사회가 어떻게 일그러지게 됐는지 얘기한다. 뼈부터 시작해 장기, 팔 다리, 이목구비를 그려 마침내 한국 사회란 한 기이한 인간을 완성한다.

그렇다고 팩트를 포기하지 않았다. 독자에게 한 문장을 제시하기 위해 수많은 수치와 근거, 데이터를 동원한다. 마치 신문 기사를 읽는 듯한 느낌이다. 87쪽에 달하는 주석은 그것만 읽어도 한 권의 포켓북이다. 그 중에서도 토마 피케티의 자본세가 왜 한국 현실에 맞지 않는지를 2쪽에 걸쳐 따로 설명한 부분이 백미다. 이 외에도 195권의 참고문헌, 52개의 기타 자료, 국내외 기사 79꼭지 등이 3년간 그가 얼마나 집요하게 팩트를 찾았는지를 알려준다.

장 교수는 “책을 쓸 때 세운 원칙 중 하나가 객관적이지 않은 얘기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누구든 반론을 제기하려면 나 만큼 공부해서 오라는 자세로 세밀하게 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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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외려 진보를 향해 돌직구로 날아간다. “좌파( 경제학자)의 가장 큰 문제는 한국 현실과 동떨어진 유럽이나 미국의 논쟁을 그대로 수입해 되풀이 한다는 것”이라고 각을 세운다. “남의 사진을 보면서 자기 얼굴을 찾는 황당한 상황”이라는 얘기다.

이 책을 ‘한국 자본주의’라 이름 붙인 것도 그래서다. “한국에 방점을 둔 자본주의 논쟁서”라는 얘기다. 장 교수는 책에서 “대안이 없기에 고쳐서라도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만드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고 “그 답은 정의로운 자본주의”라고 주장한다.

정치 얘기가 빠질 수 없다. 정의로운 자본주의는 정책으로 만들어지고 정책을 추동하는 건 정치이며 정치를 바로 세우는 건 유권자이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계층의 이익에 반해 투표하는 ‘강북우파’들에게 ‘계급투표’와 ‘기억투표’를 촉구한다. 강북우파란 강남좌파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저소득 서민층인데도 보수적 정치성향 탓에 계층의 이익에 반하는 투표를 하지 말라는 얘기다.

수상 소식에 장 교수는 “한국 경제의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건 홀로는 불가능하다”며 “책에서 비판한 많은 이들이 내게 새로운 논쟁을 해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책은 장 교수의 첫 번째 단독 저서다. 헤이북스란 1인 출판사의 첫 번째 출간물이기도 하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 심사평 - 한국경제 정의론에 물꼬를 터

2014년은 한숨 속에 흘러갔다. 세월호부터 ‘땅콩 회항’까지 사건도 많았지만 청년실업과 노인의 생활고도 무거웠다. 세계경제도 불황이다. 프랑스의 토마 피케티는 부와 소득의 불평등 문제를 천착해 명사가 됐다. 한국경제를 연구해온 장하성은 ‘한국 자본주의-경제민주화를 넘어 정의로운 경제로’에서 정의를 주장한다. 그는 한국경제가 토대부터 서구와 다르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한국에 적용할 수 있는 이론만 수용하고 통계 및 논문으로 입증된 결과만 채택했다. 그는 이 책으로 새 논쟁의 물꼬를 텄다.

소득 불평등은 장하성이 보기에도 큰 문제다. 그는 정책 개입으로 난국을 돌파하자고 한다. 걸림돌은 한국 기업의 가치 편향이다. 그들은 이익 극대화에 골몰해 경제가 팽창하면 성장의 열매를 독식한다. 장하성은 고용 문제도 대기업과 하청기업의 종속 관계를 풀면 길이 보인다고 말한다.

한국자본주의가 수렁에서 벗어나는 길은 민주주의에 있단다. 이것이 장하성의 발견이다. 공정 경쟁, 소유 및 분배의 균형도 민주주의 아래서만 가능하다.

이한섭의 ‘일본어에서 온 우리말 사전’은 의미 있는 역작으로 평가됐고 김성도의 ‘도시 인간학’ 역시 기호학이 개입된 귀중한 결실이다. 안성현의 ‘우리 혜성 이야기’도 호평을 받았다.

백승종(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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