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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도 사람답게" 외쳤는데… 성탄 전야에 화재로 외롭게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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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도 사람답게" 외쳤는데… 성탄 전야에 화재로 외롭게 떠나

입력
2014.12.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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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향상 위해 싸우던 박홍구씨

호프집 골방서 숙식하다 변 당해

박홍구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부회장의 생전 모습. 출처=장애인 인터넷신문 '비마이너(http://www.beminor.com/)'
박홍구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부회장의 생전 모습. 출처=장애인 인터넷신문 '비마이너(http://www.beminor.com/)'

박홍구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부회장이 크리스마스 캐럴로 전국이 들뜬 24일 오후 서울 중곡동의 한 술집에서 화재로 외롭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39세. 술집 영업 시작 전 화재가 발생해 피해자는 술집 안 골방을 빌려 생활하던 박 부회장 혼자였다.

숨진 박 부회장은 장애인이 보호의 대상이 아닌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던 활동가였다. 2010년 11월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열린 한 장애인 행사에서 박 부회장은 자립을 준비 중인 시설 장애인들에게 용기를 가지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린 주는 밥 먹고, 짜놓은 시간에 맞춰 사는 동물원의 동물이 아니다. 자립생활운동은 거창한 게 아니라 이 사회에서 사람으로 같이 살아가기 위한 운동이다.”

박 부회장은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로 몸이 불편했다. 대학 졸업 후 직장도 얻었지만 장애인 차별을 견딜 수 없어 2002년부터 인권운동을 시작했다. 장애인 활동보조인 제도화, 장애인 등급제 폐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 등 10년 넘게 장애인 인권 향상을 위해 싸워왔다. 같은 협회의 최명신 사무처장은 “지방에 자비로 여관방을 잡고 장애인 인권 강연을 할 정도로 의욕적이었다”고 그를 기억했다.

가족들은 박 부회장이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25일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에 설치된 빈소에서 만난 박 부회장의 동생 준구(38ㆍ뇌병변3급)씨는 “나보다 더 약하게 태어났으면서도 장애인 처지를 비관하던 나를 항상 위로하던 형이었다”며 울먹였다. 그는 “빠듯한 살림에 둘 다 사립대를 갈 수 없어 형은 서울의 명문 사립대를 포기하고 지방 국립대를 선택했다”면서 “어머니와 나, 이렇게 세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도 형의 몫이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의지와 책임감이 강한 박 부회장이지만 19일부터 아무와도 연락하지 않고 사고를 당한 술집에서 혼자 생활했다. 지인들은 장애인이라는 처지와 어려운 가정형편을 비관해 잠적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 지인은 예전에도 1년에 한두 번은 며칠씩 자취를 감췄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최명신 사무처장은 “연말이 되자 감정의 동요가 심해져 가족들과도 연락을 하지 않고 6년 전 끊었던 술까지 입에 댄 것 같다”고 말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광진경찰서는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박 부회장의 시신을 26일 부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박 부회장은 평소 알고 지내던 술집 사장에게 숙박비와 술값을 지불하고 19일부터 사고 당일까지 이 술집에서 지냈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방화나 자살 정황이 발견되지 않은 만큼 몸이 불편한 박 부회장이 신속하게 빠져 나오지 못해 변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김민정기자 fac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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