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 컸지만 신앙으로 버텨… 침몰 첫 신고 아들 의사자 됐으면"
안산시 야외공연장서 연합예배 500여명 참석… 희생자 위한 기도
다른 유가족들도 가슴 저민 휴일 "일부 목사 막말에 마음의 상처"
“보고 싶죠, 이런 날이면 더 보고 싶죠. 그래도 옆에서 위로해주는 신도들 덕분에 많은 힘을 얻고 있습니다.”
25일 오전 경기 안산시 와동 일치의모후 성당 로비에선 예수 성탄 대축일 미사를 앞두고 중년의 한 남성이 “성탄을 축하 드립니다”라는 인사를 건네며 밝은 미소로 신도들을 맞고 있었다. 그는 자식들 또래의 청년부 신도들이 마련한 1일 카페에서도 아이들의 밝은 모습을 연신 카메라에 담으며 함께 어울려 즐거워했다.
성탄절을 맞는 평범한 한 가정의 가장으로만 보이는 그는 세월호 침몰 소식을 처음으로 신고하고 숨진 단원고 최덕하군의 아버지 최성웅(52)씨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의 처절한 아픔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밝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미사가 끝난 후 인터뷰가 시작되자 최씨는 가슴 속 깊은 곳에 담아 놓았던 그리움이 북받치며 얼굴이 굳어졌다. “아들한테는 크나큰 죄인이죠. 그렇게 보냈으니.”
그리고 한참 동안 말 없이 창 밖만 쳐다보던 그는 “성탄절을 앞두고 큰 선물을 받았어요”라며 다시 말을 이었다. 4월 16일 사고 이후 단 한번도 꿈에 나타나지 않던 덕하군을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만난 것이다. “덕하가 6살 때 모습으로 왔어요. 품에 팍 안기더라고요. 꿈인데도 얼마나 반갑던지...” 최씨는 그 동안 한번도 자신을 만나러 와주지 않던 아들에게 투정을 섞어 “아빠 안보고 싶었어? 왜 이제 왔어”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 말에 덕하가 ‘아빠가 울 것 같아 못 왔어’라고 하는데....” 최씨는 그 동안 웃음 뒤에 틀어쥐고 있던 눈물을 끝내 쏟고 말았다.
애써 마음을 추스른 그는 힘든 시기 동안 버팀목이 돼 준 성당 식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신부님뿐만 아니라 성당 식구들 모두에게 감사하죠. 처음에는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냐’며 원망도 했지만 그래도 신앙심이 없었다면 못 버텼을 겁니다.” 그는 가족대책위 활동도 돕고 싶지만 진상 규명을 위해 행동을 하다 보면 누군가를 미워해야 하는 일이 생길 것 같아 마음만으로 그들에게 힘을 보태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를 처음 신고한 아들이 의사자로 지정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는 소망을 밝혔다.
최씨처럼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 가족들은 성탄절을 맞아 잃어버린 자녀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여느 때보다 더 힘든 하루를 보냈다. 종교에 기대 마음의 안정을 찾아왔던 그들도 성탄절 그 특별한 날에는 마음의 고통이 더 커졌다고 한다.
개신교 신도인 고 유예은양의 부모는 성탄절 아침 각자 다른 곳으로 향했다. 예은양의 어머니 박은희(43)씨는 교회를 찾아 성탄 예배를 드렸지만 같은 시각 유양의 아버지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예은양이 있는 서호추모공원으로 향했다. 유 대변인이 예은양을 찾은 것은 장례식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유 대변인은 10월 15일 예은양 생일에 딸을 만나기 위해 서호추모공원으로 향하던 도중 운전대를 돌렸다고 한다. 박씨는 “생일날 남편이 딸을 만날 자신이 없어 도중에 돌아왔더라고요. 그리곤 오늘 처음 예은이한테 간 거예요.” 딸을 처음 찾아간 후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한 유 대변인은 이날 오후 안산 합동분향소 성탄절 연합 예배에서 성경의 한 구절을 낭독하기로 한 약속을 결국 지키지 못했다.
박씨 역시 성탄절 예배 동안 유독 딸 생각이 더 나 힘들어했다. 지난해 예은이와 함께 성탄절 행사를 준비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예배 동안 하나님께 ‘예은이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했다가 이내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거냐’며 원망을 했어요… SNS를 보니 다른 유가족들도 어제 밤에 잠을 못 이뤘는지 새벽 3,4시까지 많은 글이 올라와 있었어요”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 권지혜양의 어머니 이정숙씨는 성탄절 미사 동안 자신보다 더 큰 고통을 겪고 있을 다른 피해자 가족들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고 전했다. “직접 안아주고 쓰다듬어 줄 수 없어 아쉽지만 지혜가 살아 있는 동안 아낌없이 사랑했고 이 땅보다는 좋은 곳으로 갔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다른 가족들보다 덜 힘든 것 같아요”라면서 “난 큰딸도 있지만 한 명뿐이었던 자식을 잃은 가정은 더욱 견뎌내기 힘들 것을 알기에 그들을 위해 기도를 했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씨 역시 딸 잃은 아픔에 여전히 힘들어 한다. “아무 생각도 없어지고 아무런 계획도 떠오르지 않아요. 사람이 계획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데 딸을 잃으면서 그런 것도 모두 사라졌어요.”
희생자 가족들 가운데 일부 개신교 신도들은 성탄절임에도 교회에 가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조용히 성탄절을 보냈다. 세월호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가족들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던 일부 목사들로 인해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한 희생자 가족은 “신앙심이 약해졌다기 보다는 교회에 실망을 했다”면서 “가족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기보다는 우리들에게 ‘이제 그만하라’는 말을 하는 보수 목사들로 인해 교회 가기가 겁이 난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날 오후 세월호 정부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안산시 화랑유원지 내 야외공연장에선 세월호 유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성탄절 연합예배가 열렸다. 참석자 500여명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하며 사고 진상규명을 위해 기도했다.
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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