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양 쓰나미 발생 10주년 복구 뒷모습은 극과 극
카오락, 호텔 등 거액 보험금 바탕, 사고 후 더 근사한 관광시설 만들어
아체주, 중앙정부와 분리 독립 투쟁... 쓰나미 나자 복구 위해 총구 거둬
2004년 12월26일 아침 인도양 연안 동남아 지역에 쓰나미가 덮쳤다. 전례를 찾기 힘든 거대 규모였다. 성탄절 열기는 죽음의 냉기로 바뀌었다. 14개국에서 22만8,000명 가량이 죽거나 사라졌다. 현지인도 많았으나 성탄절 휴가를 즐기기 위해 휴양지를 찾은 관광객도 적지 않았다. 지진해일이라 불리기도 하는 낯선 용어 쓰나미는 가공할 자연 재해의 동의어로 인류 뇌리에 새겨졌다.
쓰나미가 발생한지 딱 10주년이 된 지금, 피해 지역 대부분은 상처의 흔적을 지웠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보도한 태국 카오락과 인도네시아의 아체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쓰나미 발생 이전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한 쪽으로는 관광객이 몰리고 다른 한 쪽은 관광객들이 떠나고 있다.
카오락은 복구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 관광 붐으로 흥청거리고 있다. 10년 전보다 더 호황이다. 해안을 따라 호화로운 관광시설이 몰려들면서 쓰나미 발생 시기보다 땅값이 세 배 이상 뛰었다. 단번에 8,0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곳으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다. 카오락의 관광시설 객실 수만 봐도 호황이 느껴진다. 쓰나미 발생 당시 약 3,000개였다가 8,000개 가량으로 늘었다. 카오락 인근 푸켓공항을 이용하는 항공사도 12개에서 36개로 급증했다. 카오락 시내 중심부 식당도 두 배로 늘었다.
카오락의 호화로운 재건에는 역설이 숨겨져 있다. 태국에는 보험에 가입한 대형 호텔과 고급 시설들이 여느 쓰나미 피해 국가보다 많았다. 사고 뒤 거액의 보험금을 바탕으로 좀 더 근사한 관광시설들이 피해 지역에 들어섰다. 개선된 관광 인프라가 관광 붐 조성에 한 몫하고 있는 셈이다. 카오락 주민 차이 창시는 “쓰나미가 가져온 손실과 훼손이 카오락을 유명하게 만들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에 밝혔다.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약자의 울음소리가 커지고 있다. 해안지대 땅을 무단점유하고 있던 가난한 어부나 농부들에게 호황은 재앙이다. 쓸모 없는 땅이 폭등하자 실소유자들이 잇달아 재산권행사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아체주는 태국 카오락과 사뭇 다른 풍경이다. 아체주는 29년 동안 중앙정부와 분리 독립 투쟁을 벌였던 곳이다. 쓰나미가 발생하자 중앙정부와 아체반군은 피해 복구를 명분으로 총구를 거뒀다. 2005년 양측은 아체주의 자치를 강화하는 내용의 협정을 맺었다. 쓰나미가 만들어낸 평화였다.
이슬람 원리주의 추종 세력이 정치 주류인 아체주의 자치 강화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의 도래로 이어졌다. 커다란 재앙은 신의 시험으로 여겨졌다. 쓰나미 이후 종교에 기대려는 정서도 경직된 이슬람 율법의 적용에 영향을 미쳤다. 아체주는 쓰나미 인명 피해가 가장 큰 곳이었다.
아체주는 종교경찰과 종교재판소를 별도로 운영 중이며 올해부터 이슬람 율법을 비이슬람교도에게도 적용하고 있다. 간통이나 동성애 행위를 하면 공개 태형에 처한다. 깔끔한 해안을 가지고 있음에도 아체주에 해외 투자자의 대형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고 관광객도 몰리지 않는 주요 이유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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