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지난 24일 친서를 전달했다. 그 내용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사망 3주기를 맞아 조의를 보낸 데 대한 답례지만, 우리 측 인사에게 친서를 보내기는 처음이라고 한다. 그 의미를 과장할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애써 폄하하거나 비틀어 볼 일도 아니다.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는 북측의 초청으로 개성공단을 방문한 김성재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전 문화부 장관)에게 김정은 친서를 전달하면서 “6ㆍ15 남북공동선언 15년인 내년에는 남북관계가 정말 좋아지길 바라고 있다”며 “금강산 관광, 5ㆍ24 조치, 이산가족 상봉 등 문제에서 소로(小路)를 대통로(大通路)로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일각에서 민간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 언급이 북측의 ‘남남 갈등’ 조장 의도라는 분석도 있지만 말 그대로 우리 정부에 대한 우회적인 메시지로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지난 10월 정권 2인자인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비서, 김양건 대남비서가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전격 참석, 정홍원 국무총리와의 회동에서 “좁은 오솔길을 냈으니 앞으로 대통로를 열어가자”는 뜻을 밝혔지만, 우리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라는 돌발 변수에 막혀 남북고위급 2차 접촉이 무산됐다. 우리 정부의 성의 있는 조치가 있었지만 대북전단 풍선에 대한 북측의 총질까지 발생하면서 긴장이 고조되는 등 경색국면이 유지됐다.
이런 맥락에서 북측의 이번 남북관계 개선 언급은 인천아시안게임 당시의 분위기를 다시 이어보자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더욱이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도 계절적 문제로 당분간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남북접촉 등 우리 측의 선제적인 제안으로 북측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가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앞서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대북경제 제재인 5ㆍ24 조치 해제 논의 가능까지 언급한 마당에 우리 정부가 대화의 불씨를 살리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최근 최룡해 노동당비서의 러시아 특사방문 등 국제적 고립을 벗어나기 위한 일련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북측의 우방국인 중국, 러시아도 남북관계 개선을 요구하고 있는 마당이다. 러시아는 내년 5월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을 맞아 남북정상을 동시에 초청했다. 최근 북한인권 문제의 국제형사재판소 회부 권고를 담은 결의안까지 유엔 본회의를 통과한 상황에서 북측이 우호적인 국제환경을 조성할 필요성도 적지 않다. 주변 환경의 호기를 남북관계 개선, 나아가 북핵 문제의 진전과 연결시킬 수 있도록 정부가 지혜를 발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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