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한 학생이 친구들 폭행하는 등 작년에 심각한 학교 폭력으로 몸살
"비밀 보장할 테니 문자로 신고하라" 생활지도 교사들이 1004프로젝트
학생들 하루 수십 통 연락하며 호응, 흡연도 급감… 햄버거 파티로 자축
24일 서울 도봉구 창동고 1층 시청각실. 감색 교복 차림으로 시청각실을 가득 메운 학생들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단상에 오른 김규식(59) 교장을 쳐다봤다. “아, 아”하며 잠시 마이크 테스트를 하던 김 교장이 손에 든 축사문을 낭독했다. “사랑하는 창동고 학생들, 올 한해 학교폭력 제로에 성공한 여러분이 자랑스럽고 마음껏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성공을 자축하는 의미로 햄버거 파티를 열겠습니다.” 아이들의 입에서 “와”하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올해 ‘학교폭력 제로(ZERO)’ 도전에 성공한 창동고의 축하식이었다.
이 학교는 지난해 3~4월에만 108명이 흡연을 하다 적발됐고, 몸에 문신을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을 폭행하는 등 심각한 학교 폭력으로 몸살을 앓았었다. 지난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3차례나 소집된 ‘문제 학교’였다. 1학년 안건희(17)양은 “처음 이 학교에 배정 됐을 때만해도 학교에 대한 소문이 워낙 좋지 않아 밤새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전학 오고 싶어할 정도로 부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과 1년만에 학교가 바뀐 건 교사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생활지도부 교사들은 “사소한 다툼을 예방해야 큰 폭력을 막을 수 있다”는 모토 아래 폭력이나 왕따, 흡연의 조짐이 조금이라도 보일 경우 학생들로부터 문자메시지로 신고를 받는 ‘1004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조종철 생활지도부장은 이를 위해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전교생 1,462명에게 공개했다. 각 학급 게시판에 휴대폰 번호를 붙였고,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안내문에도 번호를 적어 지속적으로 홍보했다. 틈틈이 교내 방송을 통해 “신고자는 철저하게 비밀을 보장할 테니 이상 징후가 있으면 곧바로 신고하라”고 알렸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2학년 안지후(18)양은 “화장실에서 담배 냄새가 나거나 학교 안 으슥한 곳에 불량해 보이는 학생들이 나타나면 바로 신고했다”며 “선생님들이 달려와 곧바로 조치하는 것을 보며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1004프로젝트에 동참했다”고 말했다. 조 교사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폭력이나 흡연 문제 해결에 대한 갈증이 컸던 것 같다”며 “많게는 하루에 30통씩 연락을 받는데, 현재 카카오톡에 등록된 학생들만 900여명”이라고 말했다.
교사들도 쉬는 시간을 쪼개 ‘폭력 제로 운동’에 동참했다. 86명의 교사들은 5개조로 나뉘어 매일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 교실과 화장실을 순찰했다. 시험 직후엔 학생들이 비행을 저지를 확률이 높다는 점을 감안해 학교 뒤편이나 쓰레기장도 확인했다. 이용녀(41) 생활지도 교사는 “교사들은 일주일에 한번 꼴로 순찰하는 셈이지만 학생들은 매일 선생님이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점차 학교가 안전한 곳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아이들도 힘을 보탰다. 자율부(선도부)에 속한 70명의 학생들은 매일 아침 등교시간인 7시 30분부터 교문 앞에서 ‘외면하는 눈도 침묵하는 입도 폭력입니다’, ‘문자 한 통으로 지키는 친구’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을 벌였다. 학생들도 자발적으로 교문이나 학교 뒤편을 순찰했다. 자율부원인 2학년 정윤옥(18)양은 “여름에는 얼굴이 타고 겨울에는 너무 추워 패딩을 꼭 껴입고 학교를 돌아봐야 하지만 지난해까지 심각했던 흡연ㆍ폭력이 싹 사라져 너무 뿌듯하다”고 미소 지었다.
학교 분위기가 바뀌자 교사와 학생들의 관계도 좋아졌다. 채승룡(53) 교사는 “처음 이 학교에 발령받았을 때는 학생들이 인사도 안 하고 수업 진행이 힘들 정도로 반항하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먼저 달려와 인사할 정도로 학생들이 마음을 열었다”고 말했다.
올해 3월26일 ‘학교 폭력 제로’ 도전을 선언한 이후 단 한 건의 학교 폭력도 발생하지 않은 창동고는 이달 30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으로부터 ‘생활교육 우수학교 표창장’을 받는다.
김규식 교장은 “내년엔 학교폭력 제로는 물론이고, 흡연 제로에도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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