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오은의 길 위의 이야기] ‘아직’이라는 말

입력
2014.12.24 20:48
0 0

“발표 났어?” 한 청년이 친구에게 재촉하듯 묻고 있었다. “아니, 아직.” “근데 왜 표정이 그렇게 어두워?” “아무래도 안 될 거 같아.” 다른 청년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직 모르는 거잖아. 벌써부터 그런 표정 짓고 있으면 될 일도 안 되겠다. 밥이나 먹자. 내가 살게.” 두 청년이 골목 저편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청년 실업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했다.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는데 계속 한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름 아닌 ‘아직’이라는 말이. 아직은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다 품고 있는 기이한 단어다. 그것이 되지 않은 상태라 불안하기 그지없지만, 그만큼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희망의 상태를 드러내기도 하는 것이다. 아직은 필연적으로 기다림을 동반하므로 사람들에게 번번이 인내를 요구한다. 아직이 ‘마침내’가 되었을 때 목표는 달성되고 아직의 상태는 ‘벌써’를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이 ‘끝내’가 되는 경우, 우리는 좌절하거나 한동안 풀 죽은 상태로 지낼 수밖에 없다. 아직의 결과가 두려워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도 있다. 아직은 미래를 향해 있지만,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고 아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우리가 통과한 과거기 때문이다. 아직이 없는 상태는 기대가 없는 상태기도 하므로, 우리는 죽을 때까지 무수한 아직을 능동적으로 찾으며 살아야 한다. 아직 살아 있을 때, 아직 사랑을 할 수 있고 아직 꿈을 꿀 수 있을 때.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