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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갑을, 평화, 크리스마스

입력
2014.12.24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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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자살 미생 땅콩회항까지

온갖 '갑질'로 얼룩졌던 한 해

정의 향한 성탄의 참 의미 새겨야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경비원이 한 주민의 거듭된 모욕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고 얼마 후였다. 내 선배는 "더한 경우도 있다"면서 자신이 사는 아파트단지 얘기를 들려줬다. 이 아파트에는 최근 '단지 내 공부방에서 자원 봉사할 분을 구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었는데, 그 사연이 기막혔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와서 책도 읽고 숙제도 하라고 만든 공부방이었다. 하지만 따로 관리자가 없다 보니 엉망이 되어갔다. 떠들고 어지럽히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몇몇 중고생들은 이 곳에서 담배까지 피웠다. 보다 못한 아파트 경비용역직원이 담배 피우는 학생들을 제지했는데, “우리 집에서 주는 돈으로 월급 받으면서 왜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느냐”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결국 아파트 측은 ‘을(乙)’인 경비직원들로는 통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고, ‘갑(甲)’인 입주민 중에서 공부방을 맡아줄 자원봉사자를 구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반항기 청소년들의 버릇없는 행동으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이들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는 건, 그들의 눈에도 주민-경비원의 관계가 아파트 안전서비스 제공과 그에 대한 금전적 대가를 교환하는 수평적 계약관계가 아닌 무례와 모멸까지 용인되는 수직적 갑을 관계로 비춰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선배는 “애들까지도 알게 모르게 갑질 의식에 젖는 것 같다”고 했다.

#드라마 ‘미생’을 열심히 봤다. 정규직을 향한 ‘희망 고문’ 속에서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계약직 청춘들의 가슴 아픈 스토리를 재미있다고 하긴 좀 그렇지만, 어쨌든 총 20회 가운데 절반 이상을 봤으니 드라마를 별로 시청하지 않는 나로선 거의 ‘몰입’ 수준이었다.

미생의 일관된 테마는 갑과 을이었다. 크게 보면 ‘정규직=갑, 계약직=을’의 구도이지만, 정규직들 역시 대리든 과장이든 인사권을 매개로 ‘상사=갑, 부하=을’로 살아가고 있다. 회사 밖으로 가면 거래처들과 또 다른 갑을 관계가 형성된다.

최근에 계약직이 된 내 친구가 있다. 대형 사업장에 일하는 사내하청 근로자다. 자영업을 하다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나이 오십에 ‘장그래’가 됐다. 그는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는 하지만, 그보다는 열악한 을의 현실에 서글픔과 분노를 더 느낀다고 했다. 같은 일을 해도 급여는 본사 정규직원의 절반 밖에 안되고, 위험한 일은 계약직들이 맡고, 작업 중 웬만한 부상은 벌점 때문에 산재처리 대신 일반 병원에서 치료하고…. 그는 “계약직으로 남아 있는 한 영원히 을일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돌이켜 보니 ‘미생’이 아니어도, 압구정동 경비원의 비극 말고도, 올해 역시 기억나는 ‘갑질’은 한둘이 아니었다. 서울대 교수가 그 오랜 기간 제자들을 성추행 할 수 있었던 밑바닥에 ‘교수=갑, 제자=을’이란 종속구조가 설정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청와대 비선조직 국정개입 의혹도 따지고 보면 ‘슈퍼 갑’이 되기 위한 ‘갑들의 결투’였다. 그리고 2014년 갑의 횡포 시리즈는 ‘땅콩 회항’으로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형법상 직권남용, 공정거래법상 우월적 지위남용, 비정규직보호법상 차별금지 등 숱한 법령이 마련되어 있지만, 갑을의 깊은 뿌리는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나 역시 식당 종업원들에게 반말을 한 적, 출근길 바쁘다는 핑계로 깎듯이 인사하는 아파트 경비원을 본체만체 한 적이 꽤 있었다. 생각해보니 이 또한 갑질이었다.

#성탄절이다. 크리스천들에겐 ‘하늘엔 영광 땅 위엔 평화’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아기예수의 탄생 의미를 새기는 뜻 깊은 날이다. 땅 위에서 실현되어야 할 참 평화는 부당함과 차별됨이 없는 정의를 말한다. 이 평화를 위해 예수는 가장 낮고 비천한 곳(말구유)에서 태어나 세상의 온갖 멸시와 조롱 속에 살아가다가 결국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는 전지전능한 ‘왕 중의 왕’, 요즘 속된 말로 표현한다면 ‘갑 중의 갑’이다. 그럼에도 예수는 “섬김을 받으러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세상에 왔다고 설파했다(마태 20:28). 정의와 평화의 세상을 위해 힘 센 자들, 가진 자들, 곧 세상의 갑들에게 던지는 말이기도 했다. 기독교를 믿지 않더라도 한번쯤은 새겨볼 만한 메시지다.

이성철 부국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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