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락 여파 조선·정유업계 압박, 철강은 중국산 저가제품 수입 급증
수출 효자 스마트폰도 전망 불투명, 내수 침체 장기화… 유통 역신장 거듭
한국 산업의 역사는 2014년을 거의 모든 업종이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성장엔진에 빨간 불이 켜진 잔인한 해로 기록하게 될 것이다. 특히 주력 수출품목인 정유와 석유화학 조선 철강 해운 등은 공급과잉과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사상최악에 가까운 실적을 기록했으며, 세계 최강을 자부하던 스마트폰도 중국업체의 공세로 위상이 크게 흔들렸다.
비상경영을 선포한 현대중공업은 3분기까지 3조2,000억원의 적자를 내며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2010년 영업이익 5조원을 돌파한 후 하향세가 이어지더니 급기야 올해는 대규모 적자로 한 해를 마감해야 할 처지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등 다른 조선업체들도 전세계 신규발주 선박이 역대 최저수준으로 떨어지면서 1년 내내 “힘들다”는 말을 반복할 정도로 경영압박을 받았다. 내년에도 유가급락에 따른 해양플랜트 수주 감소 우려 탓에 사업전망이 밝지 않다.
정유업체도 수개월 전 비싸게 들여온 원유의 재고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4사의 올 한해 영업적자가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할 것이 확실해졌다. 한때는 매년 조 단위 영업이익을 가볍게 올리며 재계의 부러움을 샀지만, 올해는 직원들이 보너스를 못 받는 것은 물론 조직개편 움직임에 사내 분위기마저 뒤숭숭하다.
철강업계도 중국산 저가제품의 수입급증으로 중소업체들을 중심으로 1년 내내 아우성을 쳤으며, 해운업계도 국제운임 회복세가 더뎌지고 초대형 해운동맹의 출현 움직임에 반전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실적부진과 각종 규제로 마음을 졸였던 정보기술(IT)과 전자업계도 우울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대표적인 수출 효자품목인 스마트폰의 경우 부동의 세계1위 업체인 삼성전자마저 중국 업체들에게 밀리며 악전고투 했다. 삼성전자 IT모바일(IM) 부문 영업이익은 올해 3분기 1조7,500억원까지 주저 앉아 지난해 같은 기간의 26% 수준에 머물렀다. 경쟁업체인 애플과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의 상승세가 두드러져 내년 전망이 불투명한 점도 고민거리다. 벤처 신화를 일궜던 팬택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존폐 위기에 몰린 점도 업계를 우울하게 했다. 철옹성 같았던 한국 TV도 중국 업체들의 맹추격으로 적신호가 켜졌다. 올해 3분기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시장점유율은 40%를 기록했지만 직전 분기와 비교해 8.3%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중국업체인 하이센스와 TCL은 점유율을 크게 늘리면서 격차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네이버는 신사업을 발굴하지 못해 성장이 늦어지고, 지난 10월 출범한 다음카카오도 개인정보 보안문제로 검찰과 마찰을 빚는 등 인터넷업체도 올해는 녹록치 않은 한 해였다. 부가가치가 높은 게임업계도 ‘규제해야 할 대상’이란 부정적 시각 탓에 게임 관련 학과와 사설 아카데미 신입생 수가 줄어들고 우수인력이 중국 등 해외로 빠져나가며 홍역을 치렀다.
내수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전통적인 유통채널인 백화점과 대형마트도 역신장을 거듭하며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0월 기준 대형마트와 백화점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0.9%와 2.2% 하락했다. 대형마트의 역신장은 2012년 2분기부터 지속돼 올해 들어서도 감소 흐름을 되돌리지 못했다. 업계 1위인 이마트는 3년째 전체 매출이 제자리 걸음인데다 11월까지의 영업이익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6%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경기침체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고 있는데다 의무휴업까지 겹쳐 실적악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백화점도 분기 매출이 1%대의 성장과 감소를 반복하는 등 장기 침체국면에 들어갔다. 특히 주력품목인 의류와 잡화의 경우 고객들이 자발적으로 소비를 줄이는데다, 구매자들도 온라인몰과 면세점, 홈쇼핑 등의 채널을 이용하고 있어 업계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새로 문을 여는 백화점이 없다는 것도 업황 부진의 원인으로 지적됐다.
재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전 업종이 올해처럼 어려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내년에도 나아질 게 없을 것이란 전망이 더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허재경기자 richy@hk.co.kr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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