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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크리스마스 선물은 장난감이 정답?

입력
2014.12.24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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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선물을 직접 만들기로 했다. 아직 선물에 대한 개념이 없는 아들이지만 아빠로서 뭘 해도 해줘야 할 것 같았고, 육아휴직 상황에서 그 선물은 좀 달라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수 만든 선물을 기록으로 남겨 훗날 아들이 알 수 있게 한다면 내 노후에도 도움(?)이 될 것 같은 얄팍한 생각도 들었다.

선물은 이 아빠가 이름하여 ‘앨범형 그림책 장난감.’ 숱하게 찍어댔지만 컴퓨터 하드디스크 속에서나 빙글빙글 돌고 있는 사진들이 아깝기도 했고, 이런저런 그림과 사진들을 보고 즐거워하는 아들이 좋아할 법한 사진만 골라 인화한 다음 그림책처럼 엮으면 훌륭한 놀이 재료가 될 것 같았다.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말이다.

작년 8월부터 휴대폰 메모리를 급속도로 잠식하기 시작한 아들 사진들. 저장된 절대적인 비율의 사진이 아들의 것으로, 새 사진을 찍기 위해선 옛 사진들을 지워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놀이 도구로 거듭나게 할 수는 없을까, 라는 고민을 해봤다.
작년 8월부터 휴대폰 메모리를 급속도로 잠식하기 시작한 아들 사진들. 저장된 절대적인 비율의 사진이 아들의 것으로, 새 사진을 찍기 위해선 옛 사진들을 지워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놀이 도구로 거듭나게 할 수는 없을까, 라는 고민을 해봤다.

이달 초 입문한 문화센터 놀이수업 시간도 온통 크리스마스 이벤트로 채워졌다. 트리를 꾸미고, 케이크를 만들고 수업 중간에 잠깐 사라졌던 선생님이 산타클로스 복장으로 깜짝 돌아와 메고 온 주머니에서 뭘 하나씩 내놓는다. 집에서 트리를 만들진 않더라도, 엄마 아빠가 산타로 분장하지 않더라도 적당한 때에 ‘의미 있는 선물’ 하나 해줘야겠다는 생각은 진작부터 하고 있던 터. 문화센터에서 접한 이런 풍경은 자연스럽게 그 ‘의미 있는 선물’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변신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크리스마스 선물 제작 작업은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 전화 한 통에 주춤해졌다. “얌마, 애한테 그런 거 선물하면 친구들 사이서 왕따 당해.” 아이들 선물에도 유행이 있으며 그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 또래 틈에 낄 수가 없고, 그 유행이라는 것을 유치원 애들은 물론, 요즘엔 어린이집 아이들까지도 다 안다는 것이다. 어린이집, 유치원에 각각 아들 하나씩을 보내고 있는 그 친구는 “지금은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이니 올해만 그렇게 하고 내년부턴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힘 빠진 이 아빠의 손에는 쉬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급구한 크리스마스 선물용 아들 눈썰매. 아들이 좋아하는 꼬마버스 타요 색깔(파랑)에 역시 아들이 사랑하는 뽀로로를 한데 담은 물건이지만 정작 썰매를 끌 수 있는, 눈다운 눈은 내리지 않고 있다. TV를 볼 때도, 다른 장난감을 갖고 놀 때도 여기 앉아서 논다. 눈을 이토록 기다려 본 게 얼마만인지….
인터넷에서 급구한 크리스마스 선물용 아들 눈썰매. 아들이 좋아하는 꼬마버스 타요 색깔(파랑)에 역시 아들이 사랑하는 뽀로로를 한데 담은 물건이지만 정작 썰매를 끌 수 있는, 눈다운 눈은 내리지 않고 있다. TV를 볼 때도, 다른 장난감을 갖고 놀 때도 여기 앉아서 논다. 눈을 이토록 기다려 본 게 얼마만인지….

그 친구도 웃으면서 한 이야기고, 이 아빠도 웃으면서 받아 넘긴 이야기지만 곧 이 아빠의 이야기도 될 것을 생각하니 오싹해진 등골 여파가 컸다. 친구의 이야기 요지는 이렇다. ▦아빠의 어린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 다양한 애니메이션과(여기까지는 이름을 외운다)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등장 인물(물건)들이 있으며 ▦그 애니메이션 중 하나가 붐을 타면 관련 장난감 생산공장은 불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급이 달려 품귀현상이 빚어지고 ▦공식 판매 몰에는 품절이라고 표시되지만 희한하게도 일반 개인업자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상당한 물량을 확보, 오픈마켓에서 판매하고 있다. ▦문제는 가격인데, 공식몰 판매가의 최소 2배, 요즘 같은 선물시즌엔 3배 이상 올라간다. ▦이 꼴 안 보려면 예민한 물품으로 비교적 장난 덜 치는(덜 칠 수밖에 없는) 대형마트에서 구입하면 되는데, 그러자면 새벽부터 줄을 서야 하고 ▦바쁜 아빠 엄마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친구의 말을 빌리면) 생산업체와 뒤로 결탁했을지도 모르는 업자들에게 지갑을 연다는 것이다.

‘아들내미가 아무리 졸라도 그렇지 애들 장난감에 무슨 30만원이나 쓰냐’는 말에 그 친구는 많은 요구사항 중에서 일부만 들어준 것이라며 꽤 만족스러워 했다. 주문한 장난감은 유치원으로 아들 몰래 배달되며 산타로 분장한 유치원 관계자가 아들에게 선물을 주고, 덩실덩실 집으로 달려온 아들이 더 착한 어린이가 될 것을 다짐하면 폭발 일보직전의 마음은 좀 가라앉는다는 것이다.

친구 이야기 때문(덕분)인지, 동심을 인질로 돈벌이 수단이 된 세상 장난감과는 거리를 두고 싶은 생각 때문인지 잠시 주춤했던 ‘앨범형 그림책 장난감’ 제작은 아예 좀 미루기로 했다. 지금으로선 복직 직전이 유력한데, 이 경우 이 장난감은 이 아빠의 육아휴직 1년 기록물로서 가족기록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아내의 전폭적인 제작비 지원 가능성이 높다. msj@hk.co.kr

정민승의 편파적 육아일기 한꺼번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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