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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암투병 이겨내고… 극한의 철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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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암투병 이겨내고… 극한의 철인으로

입력
2014.12.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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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3분의 2 잘라 내고 인간한계 도전… 달리기·철인 3종·카누 등 연중 경기

"경기 준비하다 암 완치 희소식 들어, 다른 환자들도 나를 보고 용기 갖길"

23일 오전 강원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 스키장 결승선을 통과한 김상택씨는 "밤새 한숨도 못 자고 내 소식을 기다린 가족들에게 철인의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챌린지 컵 주최 측 제공
23일 오전 강원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 스키장 결승선을 통과한 김상택씨는 "밤새 한숨도 못 자고 내 소식을 기다린 가족들에게 철인의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챌린지 컵 주최 측 제공

동짓날 기나긴 밤 강원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 순백의 슬로프에서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신은 김상택(58)씨는 채 몇 미터도 나아가지 못하고 자꾸만 고꾸라졌다. 평생 처음 타보는 스키였다. 수은주는 이미 영하 15도 밑으로 떨어졌고, 눈보라까지 몰아쳐 분명 스키를 타기 좋은 날은 아니었다.

엎치락뒤치락 김씨의 어설픈 질주는 100㎞나 계속됐다. 크로스컨트리 트랙을 계속 도는 동안 수없이 넘어져 온몸에 멍이 들고, 저체온증의 위기가 엄습할 무렵 김씨의 고글에 결승선이 비쳤다.

결승선 통과 시각은 23일 오전 6시 30분. 22일 오전 8시에 출발했으므로 정확히 22시간 30분에 걸친 사투였다. 인간의 극한을 시험하는 스포츠 챌린지 컵(Challenge’s Cup)을 완주한 그에게 ‘철인’의 칭호가 허락됐다. 그는 “5년에 걸친 암과의 싸움에서 완승을 거둔 순간이기도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5년 전 김씨는 종합건강검진에서 위암2기 진단을 받았다. 평소 운동을 좋아해 건강만큼은 자신 있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그는 서울삼성병원에서 위를 3분의 2 가량 잘라내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수술 결과는 좋았지만 암이란 것이 그렇듯 재발 위험이 김씨를 그림자처럼 쫓아다녔다. 그러나 김씨는 움츠러들지 않고 운동으로 암을 이겨내자고 자신을 다잡았다. 그런 김씨에게 평소 알고 지내던 극한스포츠 기획자이자 환경운동가 박기섭(48)씨가 자신이 주최하는 챌린지 컵 참가를 제안했다. 사계절 내내 달리고 수영을 하다 보면 암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챌린지 컵은 국내에선 2005년 처음 열렸고, 이듬해부터는 격년으로 개최되고 있다. 춘분에 100㎞ 달리기, 하지에 철인 3종 경기(수영 3.9㎞, 사이클 180.2㎞, 마라톤 42.195㎞), 추분에 100㎞ 카누, 동지에는 100㎞ 크로스컨트리 스키 대회가 열린다. 모든 종목을 완주한 사람만 비로소 철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지금까지 여섯 차례 열린 대회에 내로라 하는 운동선수 17명이 참가했지만 김씨를 포함, 5명만 철인 칭호를 얻었다는 건 이 경기가 얼마나 극한스포츠인지 방증한다. 박씨는 “철인 3종 경기만으로도 벅찬데 카누와 크로스컨트리 스키라는 흔치 않은 종목까지 더해져 젊은 사람도 완주하기 매우 어렵다”며 “적잖은 나이에 암 투병까지 하던 김씨가 철인이 된 것은 감동 그 자체”라고 말했다.

하늘도 김씨의 투지에 감동한 것일까. 김씨가 올해 6월 철인 3종 경기를 준비할 무렵 병원에서 “암이 깨끗하게 완치돼 재발 가능성이 없다”는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김씨는 “내 도전을 지켜봐 준 아내와 두 딸에게 큰 선물이 됐다”며 “암과 싸우고 있는 다른 환자들도 나를 위안 삼아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북 경주 출신인 김씨는 자동차 부품 공장 연구소 시험반장으로 근무해왔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35년 정든 직장을 떠나는 김씨는 내년부터 ‘운동 도우미’로 인생 2막을 시작할 계획이다. 최근 경주시가 사연을 접하고 그를 ‘경주 월성동 체육회장’으로 임명해준 덕이다. 김씨는 “비록 전문가는 아니지만 동네 주민센터에서 어르신들께 운동하는 법을 가르쳐 드리며 체력관리를 돕고 싶다”고 말했다.

주먹을 꽉 쥔 중년의 철인은 실천을 강조했다. “진부한 말이지만 매사에 ‘하면 된다’는 심정으로 임하면 이루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주어진 상황을 탓하기보다 목표를 위해 한 발자국만 내디뎌 보세요. 깜짝 놀랄 결과가 우리를 기다릴지 모릅니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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