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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손글씨 편지를 쓰자

입력
2014.12.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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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빠르고 사람은 바쁘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고 있다. 어제 산 신상품이 오늘은 구형이 되는 속도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한 박자 쉬어갈 법도 한데 혼자만 뒤처질까 하는 조바심에 우리네 삶은 늘 바쁘다. 그래서일까? ‘느리게’ 라는 말에도, 마음을 움직이는 무엇인가 에도 눈길이 가는 시대다.

잊혀진 가수와 리메이크된 옛 노래에 열광하고, 추억의 맛을 찾아 뒷골목 허름한 밥집으로 발길을 옮기는 사람들이 느는 것도 ‘빠르게’의 반대말을 찾고 있는 현대인의 자화상일지 모르겠다. 느리지만 따뜻한 감성이 살아있는 삶을 꿈꾸는 것이다.

손글씨를 업으로 하는 내 직업 역시 아날로그에 가깝다. 컴퓨터 자판과 스마트폰 터치가 익숙한 디지털 시대에 손으로 글씨 쓰는 게 뭐 그리 중요한가 싶겠지만 정형화된 문자에 따뜻한 이야기와 감성을 담아내는 손쉬운 방법이 바로 손글씨다.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적어 보내는 메일보다는 못썼지만 꾹꾹 눌러 쓴 손편지의 맛이 더 깊을 뿐만 아니라 보내는 이의 마음이나 정성까지 고스란히 담아 보낼 수 있기에 더 귀하고 값지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아날로그적 감성’ 표현은 사람의 마음을 다독이고, 쉬어가게 하는 무언의 힘이 있다.

얼마 전 전교생이 29명인 전북 정읍의 작은 초등학교에서 나름의 재주를 살려 손글씨 수업을 진행했다. 먼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바탕으로 ‘ㅗ’는 ‘ㅜ’가 되는 원리, 즉 ‘통’은 ‘퉁’이 되고 ‘콩콩’은 ‘쿵쿵’이 되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를 담은 쉬우면서도 과학적인 한글을 손글씨를 통해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나뭇가지나 솔방울 등 자연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도구들을 쥐어주며 스스로 지은 글이나 시를 쓰게 했다. 우물쭈물 난감해하던 아이들도 시간이 지나자 이내 재미를 붙이고 곧잘 써내려 갔다.

글씨는 경험이다. 아이들이 들과 산에서 보고 만지고 느꼈던 도구들은 말이나 글이 가진 소리와 뜻, 형태를 더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단풍잎으로 쓴 글씨는 노랗고 붉은 잎의 색감과 낙엽이 떨어지는 한들한들함이, 돌멩이로 쓴 글씨는 돌의 단단하고 묵직한 질감이 느껴지는 것을 스스로 느끼며 아이들은 자신과 글씨, 그리고 자연이 하나 되는 과정들을 체험했다. 글자 같기도, 그림 같기도 한 묘한 매력을 지닌 세상에서 하나뿐인 서체를 만들어 보았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자연의 도구를 이용해 한글과 놀며 즐겼던 찰나의 경험은 디지털 기기에 빠져 감수성을 잃기 쉬운 요즘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특별한 하루로 기억됐을 것이다. 이렇게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나면 아이들뿐 아니라 나 또한 메말랐던 감성이 차오르는 느낌을 받는다. 앞으로 진행할 작업에 대한 영감을 받을 때도 있다.

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예술 명예교사로 지난 4년간 ‘손글씨로 배우는 한글’ 수업을 통해 해남, 통영, 강릉, 태안 등의 초등학생과 디자인을 지망하는 학생들, 그리고 손글씨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문화예술 교육이야말로 바쁜 삶 속에서 예술을 가깝게 느끼며 잃어버렸던 감성을 되돌릴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라는 사실이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만난 시민들은 일상 속에서 쉽고 친숙하게 문화예술 교육을 향유하며 잠시나마 잃어버렸던 감성을 회복한다. 이런 모든 체험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초석이 된다.

올해가 가기 전, 사랑하는 이에게 어눌하거나 못쓴 글씨나마 마음을 담은 손편지 한통 보내면 어떨까. 쓰는 이의 고운 마음이 손글씨로 전달돼 받는 이의 기쁨은 배가될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손으로 하나하나 쓴 글씨는 글쓴이의 정겨운 이야기도 들리지만 소리도 마음도 더 잘 보이게 한다. 무엇보다 다정다감한 소통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손글씨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되살리고 세상을 보다 부드럽게 한다.

강병인 문화예술 명예교사ㆍ캘리그라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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