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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이 나도 무너지지 않는, 잘 휘어지는 건축물을 짓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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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이 나도 무너지지 않는, 잘 휘어지는 건축물을 짓고 싶습니다

입력
2014.12.2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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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희 1986년 전남 진도 출생ㆍ전남대 국어국문과 졸업ㆍ고려대 국어국문과 대학원 재학
김복희 1986년 전남 진도 출생ㆍ전남대 국어국문과 졸업ㆍ고려대 국어국문과 대학원 재학

자주 슬프고 화가 많이 납니다. 그런데 무서워져서 화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시가, 저로 하여금 무엇도 할 수 없도록 가슴을 뜨겁게 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하는 이상한 입 모양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저를 자꾸 방에서 나오게 하고, 어디론가 데려가고, 사람들 앞에서 말을 더듬게 합니다. 많이 더듬어서, 더듬는 것으로 기공이 많고 잘 휘어지는 건축물을 짓고 싶습니다. 지진이 나도 무너지지 않고 사람들을 잘 재워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 건물에서 잘 자고 싶습니다. 그런 건물 부자가 되어서 세 같은 거 받지 않고 다들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대책 없이 낙관적인 저를 살펴준 가족과 친구들아, 고맙습니다. 진도에서 태어나 노화도, 고금도, 완도, 광주를 거쳐 지금 서울입니다. 당신들이 제가 모자란 짓을 저지를 때 지켜봐 주고, 다정해 주어 이만큼 삽니다. 저도 사랑합니다. 저를 제자로 받아 주신 강헌국 지도교수님, 고맙습니다. 글과 음악과 농담을 공유하는 문우들, 많은 술과 커피를 함께 마셔주고, 서로의 글을 읽어주기도 하는 아름답고 미친 바보들, 고맙습니다. 제가 종종 없어져도, 다시 나타날 때마다 어깨동무해주세요. 부탁합니다. 오랫동안 책으로만 만나 뵈었던, 그래서 저 혼자 좋아했던, 남진우 이문재 황지우 심사위원님들,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쓰겠습니다. 시 쓰는 게 좋다는 제 말을 들어주신 신용목 이영광 권혁웅 선생님, 고맙습니다. 저도 조용히 쓰겠습니다.

몇 해 전, 당신께서 하신 말, 멈춘 자리에서 오래 머무르라는 그 말이 제 창문입니다. 방에서 나왔다고 생각했지만 계속 다른 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뛰어내리지 않고 계속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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