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시내버스로 통학할 초등학생 아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저가폰을 사주려 하니 어머니께서 최신 스마트폰을 사주겠다고 하신다. 귀한 손자에게 저가폰을 사준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에서 중저가폰은 이미 대세다. 저렴하며 예쁘고, 기능도 손색없다면 누가 이를 마다하겠는가.
2014년 세계 경제계 뉴스 중 우리 산업에 직접 영향을 미친 것은‘샤오미 쇼크’다. 샤오미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3위권에 올랐고, 중국 전체 휴대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며 우리에게 ‘삼성전자 너마저’라는 충격을 안겼다. 최근 삼성전자 글로벌 전략회의 의제 중 그 핵심이 ‘차이나 쇼크’에 대한 위기대응일 만큼 상황은 심각하다.
점점 똑똑해지는 소비자의 선택에 맞춰 스마트폰에 낀 거품을 빼 합리적인 가격에 뛰어난 기능의 상품을 내놓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전략적 수순이다. 그러나 동질적인 경쟁자가 집중된 시장에서 가격으로 경쟁우위에 서려면 치킨게임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간과해선 안 될 것이 있다. 끊임없이 변하는 고객 가치를 한발 앞서 새롭게 창조하려는 노력, 기업의 자원을 재조합하는 지속적인 혁신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샤오미를 보다 세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샤오미의 셀링 포인트는 ‘훠즌자스’(품질 좋고 가격도 저렴한 제품)이다. 기술에선 삼성전자와 비교할 순 없지만 샤오미의 전략엔 애플과 구글, 아마존, 델 등 성공한 IT기업들의 모델들이 녹아있다. 샤오미는 자체 운영체계(OS)인 MIUI 플랫폼을 핸드폰에 탑재, 유료게임 등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하며 지난해 1,69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단말기를 원가 이상 받지 않으면서, 앱 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만드는 소프트웨어 기업이다.‘선 주문 후 제작’ 방식으로 재고를 최소화하고, 단말기 제작은 아웃소싱 하며, 판매는 온라인으로만 이뤄진다. 마케팅 역시 소셜미디어로만 이뤄진다. 한 마디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전자상거래, 유통 모든 분야에서 혁신적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과연 삼성전자가 제조원가와 유통 마진을 최소화한다고 해도 벤처기업 샤오미의 헝그리 마인드를 넘어선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구글노믹스의 대가 제프 자비스 뉴욕시립대 교수는 “개인과 기업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부분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연결만 시켜주면 된다. 다른 사람이 잘하는 것을 잘하려고 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말했다. 샤오미를 떠올리는 얘기이다. 그래서 삼성 내부에선 샤오미를 인수하거나 샤오미와 같은 스타트업에 투자해 삼성이 하기엔 부담되는 분야를 맡기는‘가마우지’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기다가 샤오미의 사업모델이 성과를 높이는 데는‘열광팬’의 참여가 있다. 샤오미는 매주 한 차례 고객들의 의견들을 취합해 플랫폼인 MIUI 업데이트를 한다. 자신들의 취향과 의견이 반영된 맞춤형 휴대폰 구입에 열을 올린다. 엇비슷한 가격에 똑같은 사양으로 대량생산된 제품과 맞춤형으로 생산된 제품 중 과연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물론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한 삼성전자가 가격을 내리고 중국 휴대폰사들과 공격적으로 일전을 벌인다면 승산은 있다. 그러나 비용 대비 높은 수익성을 추구하는 기존 삼성의 가치경영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기존 제품과 서비스 비용을 낮추는 특유의 관리 기술에만 매달리다 보면 혁신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 노키아의 몰락 원인도 과도한 관료화에 있다. 창업 초기 기술을 혁신하고 빠른 신제품을 출시하는 열정은 위험을 회피하고 성공이 보장된 안정된 방식을 고집하는 방식으로 변질됐고, 결국 변신의 타이밍을 놓쳤다.
기술혁신을 통해 이룬 갤럭시 신화가 지금까지 경쟁우위의 원천이었다면 이젠 근원적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조해 새 판을 펼쳐야 한다. 그것이 타이젠이든 웨어러블이든 새로운 비전과 이에 걸 맞는 전략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돌파구를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혁신을 위해선 우선 내부적인 조직구조와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고객의 니즈를 꿰뚫고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 발상의 전환을 장려하는 문화. 다양한 혁신 원천을 지속해서 학습하는 문화. 깨어있는 조직은 필수적이다. 2015년 삼성전자의 또 한 번의 변신을 기대해 본다.
장학만 산업부 선임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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