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9일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렸다. 나아가 통진당 해산을 근거로 그 소속 국회의원 5명의 의원직까지 박탈했다. 국민의 일부를 대표하는 한 정당을 해체했을 뿐만 아니라 5명이나 되는 국민 선출의 국회의원직을 박탈했으니, 어떤 점에서 보면 헌재가 가진 권력은 과거 독재자보다 더 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이 나자마자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민주주의의 지킨 역사적 결정”이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역사적 결정”이 될지도 모른다.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강고하게 형성된 이념의 족쇄를 조금씩 넘어서면서 어렵사리 그 폭을 넓혀 갔던 우리 민주주의가 이번 헌재 결정으로 다시 이념의 족쇄에 묶이는 결과가 되었기 때문이다.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이 갖는 문제점은 여러 측면에서 지적될 수 있다. 우선 가장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너무 좁게 해석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해석에 의거한다면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사상의 자유, 결사의 자유조차 폭넓게 보장될 수 없다. 민주적 기본질서의 이름으로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자유가 제약당하고 있는 모양이니 말이다.
다음으로 통진당 해산의 헌재 논리 역시 매우 빈약하다. 북한식 사회주의를 따르는 일부 종북세력이 당내 주도세력이니 당 전체가 종북정당이라는 것은 논리 비약이다. 헌재가 통진당 해산을 넘어 국민 선출의 국회의원직까지 박탈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한편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음모사건에 대한 유죄가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통진당 해산을 명할 만큼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폭력성이 있었는지도 분명치 않다.
그렇다면 문제 투성이의 이런 헌재 결정이 나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다양성을 잃은, 보수 편향의 헌재 구성 때문일 것이다. 헌재는 8:1로 통진당 해산을 결정했는데, 이는 통진당 해산에 대한 60%대의 찬성 여론보다 더 보수적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서울대 조국 교수는 이러한 판결에 대해 ‘헌재 안팎 공안파의 승리’라 일갈했는데,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헌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통진당 역시 그 동안 헌재에 의해 그러한 결정이 나올만한 빌미를 제공해 왔기 때문이다. 종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지는 몰라도, 통진당이 어떤 정치세력보다도 상대적으로 북한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근원은 1980년대 운동권의 NL(National Liberation)논리, 즉 민족해방의 논리로까지 소급된다.
하지만 북한이 민족해방의 주체가 될 수 있나? 김일성이 일제에 대해 무장투쟁을 벌였던 해방 전의 상황에서는 그러한 논리가 부분적인 타당성을 가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방 후 북한은 김일성 개인 숭배의 전체주의적 독재체제로 나아갔고, 그 결과 지금은 거의 세습 왕조나 다름없는 시대착오적인 독재체제 이상이 아니다.
북한의 현실이 이럴진대, 왜 북한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가 남한 진보정당의 가장 우선적인 기준이 되어야 하나? 통진당이 그 진보성의 가장 우선적인 요소로서 북한에 대한 우호성을 내세운다면 그것은 진보적이라기보다 오히려 보수적이다. 그것은 통진당의 인식이 변화된 북한의 실제 현실을 보지 않고 해방 이전의 이상화된 먼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남한의 진보정당이라면 그들은 당연히 남한의 사회 현실에 기반해야 한다. 그들이 뿌리를 내리고 활동하는 남한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당으로서의 진보정당이 바로 그들의 본령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진보정당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것은 그들의 진보성의 기반이 남한 사회 자체에 있는 것이지, 왜곡된 이미지의 북한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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