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선재센터 '그만의 방...' 전
전시장의 한 귀퉁이에 걸린 액자 속에는 그림이 아니라 임명장과 상장이 들어 있다. 경찰공무원이었던 고 김문석씨는 1961년 은퇴 후 2005년 사망할 때까지 이 종이들을 자신의 몸처럼 아꼈다. 공직에 머물렀다는 것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설치작가 박재영은 3평 남짓한 크기의 컨테이너를 전시실에 들였다. 가상의 우익단체 회원인 60대 후반 남성 P씨의 활동공간을 상상해 만든 작품이다. 기득권의 지지자로 알려진 이들은 정작 그 자신들의 삶에서는 소외돼 있다. 결국 국가주의에 기대 자신을 찾으려는 것이다.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그만의 방: 한국과 중동의 남성성’ 전은 최근 부쩍 늘어난 '남성성의 위기' 담론에 반응한 전시다. 전시를 기획한 이혜원 대진대 미술학부 교수는 “여성주의 담론은 성숙한 반면 남성에 관한 접근은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오히려 ‘불쌍한 남성’을 다루는 대중문화 쪽에서 더 앞서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17일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처럼 소외된 아버지 세대를 조명하는 작품들이 늘어났다.
강력한 가부장적 질서 하에 놓인 한국과 중동 지역의 작가들이 전시에 참여했다. 이 교수는 “한국과 중동에서 남자들이 가부장제의 이득을 누리고 있지만 이들은 가부장제가 원하는 남성성을 실현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도 가장 강하게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많은 작가가 저마다 다른 주제로 남성을 이야기하는 바람에 전체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 작품들도 많이 나왔다. 이 교수는 “남성이 자신들의 문제를 표현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작 남성성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작업은 여성 작가들의 몫이다. 여성주의의 비판 대상인 남성 중심적 질서가 남성의 삶도 옭아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성성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고 김문석씨의 임명장 옆에는 고교생 이준택의 소지품이 진열돼 있다. 그가 애착을 보이는 축구팀 바이에른 뮌헨의 유니폼과 가수 아이유의 앨범 및 사진첩이다. 이 교수는 “젊은 세대는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고 있다”며 남성이 남성성의 압력에서 점차 벗어날 것이라 예견했다. 전시는 내년 1월 25일까지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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