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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도] 못생겨서 죄송한 사회

입력
2014.12.22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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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유행어로 유명세를 탔던 코미디언 故 이주일씨. 그러나 이제 이 유머는 대중의 '진심'이 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0년대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유행어로 유명세를 탔던 코미디언 故 이주일씨. 그러나 이제 이 유머는 대중의 '진심'이 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장동건이 2,000만원이 입금된 통장을 지닌 채 태어났다면 저는 마이너스 2,000만원 통장을 가지고 태어날 꼴입니다.” 자학적 재담이다. 방송인 김제동이 오래 전 어느 방송프로그램에서 남긴 우스개다. 출중하지 못한 외모를 태생적 재력에 빗댔다. 웃다가 씁쓸해질 유머다.

외모는 선천적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지니 어쩔 수 없다. 그런데도 한국사회에서 외모는 자산이다. 주요 능력 중 하나로 여겨질 때가 종종 있다. 어떤 이의 행동을 해석하는 주요 잣대가 되기도 한다. 바로 이런 식. “얼굴은(또는 얼굴도) 못생겨가지고…”

‘땅콩 회항’으로 말들이 들끓는다. ‘갑질’의 정점을 보았다는 분노, 재벌가의 비뚤어진 행태라는 지적, 이해하고 공감한다. 업무 지시를 가장한 행패가 있었고 직위를 동원한 은폐 시도가 있었다는 것도 안다. 여론의 화살이 날아가 꽂히는 과녁을 동정할 마음은 그리 없다.

공분하면서도 동감하지 못할 때가 있다. 피해자라 할 박창진 대한항공 사무장에 대한 일부의 평가다. 당연하게도 그의 용기 있는 고발에 힘을 보태고 싶다. 그의 외모가 여성들을 중심으로 화제가 되는 것도 자연스럽다. 인지상정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고속도로 삼아 퍼지는 몇몇 외모 예찬은 불편하다. ‘얼굴이 잘생겨서 그런지 매사 자신만만하다. 그래서 당당히 고발에 나선 듯하다. 역시 잘생긴 사람은 다르다’ 식의 글이 SNS를 떠돈다.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외모에 독설을 퍼붓는 경우도 있다. 피해자가 잘 생기면 더 영웅 대접을 하고 가해자의 외모가 그럴싸하지 못하면 악의 화신으로 모는 식이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장남 유대균씨가 검거될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유씨가 대동했던 ‘호위무사’ 박수경씨에 대한 외모 찬사다. 범법자라도 빼어난 외모의 소유자라면 경외심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왜 저리 어여쁜 얼굴로 범죄자가 됐을까?’라는 호기심과 동정심이 발동한다. 냉기 어린 ‘얼굴은(또는 얼굴도) 못생겨가지고’와는 정반대의 사고 방식이 적용된다.

부모의 재력과 함께 외모는 선천적이다. 개인의 의지와 노력이 작용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그런데 사회적 대우는 영 다르다. ‘돈 많은 부모 만나 호강하는 주제’라는 비아냥은 있어도 ‘잘생기고 예쁜 부모 만나 인생 잘 풀린 팔자’식의 빈정거림은 없다. 부모의 재력과 빼어난 외모가 결합하면 ‘엄친아’ ‘엄친딸’로 격상된다.

물론 잘 안다. 인체의 미에 대한 찬미는 인류의 오랜 전통이다. 고대 서구가 연구했던 황금비율도 사람 몸에서 비롯됐다. 서구에서도 ‘루키즘’(Lookism)이란 신조어로 외모지상주의를 통탄한다. 하나 한국사회의 외모 절대주의는 지나치고도 지나치다. 인종과 지역과 종교에 따라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는 높으나 외모에 따른 차별 반대 주장은 너무나도 적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차별은 그 어느 구분과 구별 짓기보다 악성이다.

몇 년 전 젊은 중국 친구들이 고역스러운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여자가 18세 생일을 맞으면 부모들이 성형수술을 선물한다는데 사실이냐?” 낭설이지만 외모지상주의가 넓게 퍼져있고 깊게 뿌리 박힌 한국 사회이니 마냥 부정할 수는 없었다. 외모가 주요 능력 중 하나로 꼽히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을 워낙 많이 봐왔으니까. 취업을 위해 얼굴을 고치고 얼굴을 고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남녀가 있는 사회이니 대륙에 그런 풍설도 퍼졌으리라.

1980년대 초반 코미디언 고 이주일은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유행어로 오랜 무명을 딛고 유명세를 얻었다. 못생겨서 죄송하다니…. 못생긴 게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우스꽝스러운 말투로 엉뚱한 사과를 하는 모습에 대중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이제는 이주일의 유머가 우스개가 아닌 진심이 된 시대다. 못생기면 정말 죄송한 사회가 됐다. 유감스럽게도.

라제기 국제부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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